유럽 배터리 기업이 잇달아 파산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유럽 배터리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크게 미국, 중국, 유럽으로 나뉜다. 중국 기업을 견제하는 미국에선 한국 기업이 유리하다. 중국은 사실상 중국 업체가 독주하는 시장이다. 결국 한국과 중국 배터리 기업의 최대 격전지는 유럽이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중국보다 이르게 유럽에 진출, 시장을 선점했다. 하지만 시장점유율 기준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이 유럽에 세 번째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어 경쟁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 / LG에너지솔루션 제공

20일 배터리 업계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노르웨이 배터리 기업 모로우배터리 이사회는 지난 6일 파산을 신청하기로 했다. 모로우배터리는 지난 1월 상업 생산을 시작하고 4월 첫 납품도 마쳤으나, 유럽 내 배터리 수요 둔화와 자금난을 이기지 못했다. 대규모 배터리 양산을 지속하고 공장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장기 자금 조달에 실패한 것이 파산 신청을 결정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모로우배터리의 파산 신청으로 유럽 현지 배터리 기업은 사실상 사라졌다. 유럽 배터리 최대 기대주였던 스웨덴 노스볼트도 지난해 3월 파산을 신청했다. BMW 등 완성차 업체의 주문 취소, 수율 확보 실패로 인한 양산 지연이 원인이었다. 이후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 라이텐은 스웨덴 공장 등 노스볼트 자산을 지난해 8월 인수했다.

유럽 배터리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으나, 유럽 현지 배터리 기업이 전무한 상황에서 유럽 내 한국과 중국 기업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2010년대 후반부터 유럽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수율 안정화를 통해 선점한 효과를 노린다.

한국 배터리 3사 중 유럽에 가장 먼저 진출한 기업은 삼성SDI다. 삼성SDI는 2017년 5월 헝가리 괴드에 공장을 준공했다. 2000년대 초반 삼성SDI의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Plasma Display Panel) 공장으로 쓰였던 시설을 배터리 공장으로 전환했다. 삼성SDI는 헝가리에서 전기차용 니켈·코발트·망간(NCM)와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를 제조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같은 해 유럽에 진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배터리 공장을 2017년 7월 준공하고 전기차용 NCM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양산하고 있다. SK온은 헝가리에 공장 3개를 뒀다. 헝가리 1공장 가동은 2020년에 시작했고 2공장은 2022년, 3공장은 2024년부터 가동하고 있다. SK온의 주력 제품은 전기차용 NCM 배터리다.

뒤늦게 참전한 중국은 유럽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CATL은 2022년 말부터 독일 공장에서 배터리 생산에 들어갔고, 헝가리 데브레첸에 100GWh 규모의 공장을 건설했다. 해당 공장은 유럽 내 최대 생산 능력을 자랑한다. CATL은 스페인에 유럽 내 세 번째 공장도 건설할 예정이다. BYD는 헝가리에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을 동시에 짓고 있고, 중국 EVE에너지도 헝가리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유럽은 한국 배터리 업체의 텃밭으로 여겨졌으나, 중국이 LFP 배터리를 내세우며 유럽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위협 요소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조만간 폴란드 공장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여기에 프리미엄 전기차에 탑재되는 원통형 46배터리 생산도 검토 중이다.

배터리 업계에선 CATL의 유럽 공장이 자리 잡는데 상당 시간이 걸릴 예정이라, 한국 배터리 업체와의 경쟁은 아직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유럽에서 공장을 운영하려면 유럽 현지 인력을 고용해야 하고,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에 맞춰 유럽 내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 배터리 3사는 10년 여의 시간 동안 유럽 현지에 적응, 한국 공장 수준의 수율을 맞췄다.

무엇보다 CATL을 포함한 중국 기업의 최대 강점인 가격 경쟁력을 유럽에서 누릴 수 있는지가 미지수라는 점도 한국 기업에는 경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업체의 배터리 제작원가는 유럽 생산 시 중국 대비 10~20% 증가한다. 유럽에서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때 인건비가 늘어나고, 수율을 맞추는 과정에서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SNE리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업체의 배터리 제작 원가는 킬로와트시(kWh)당 90달러 수준으로 중국 업체보다 열세지만, 유럽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유럽 현지 생산 경쟁이 본격화할수록 단순 셀 가격뿐 아니라 생산 안정성, 수율, 공급 신뢰도 등이 중요한 경쟁 요소"라며 "한국 배터리 업체가 충분히 차별화된 경쟁력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