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운반선(PCTC)이 처음으로 '1만대 벽'을 넘었다. 현대글로비스가 운항에 투입한 '글로비스 리더'호는 소형차 기준 1만800대를 실을 수 있는 세계 최대 PCTC다. 현재까지 인도된 선박 가운데 차 1만대 이상을 싣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길이 230m, 폭 40m의 선체 안에는 14개 층의 차량 데크가 들어섰으며 전체 적재 공간은 축구장 28개 넓이에 달한다.
글로비스 리더호는 HMM이 발주해 인도받고 현대글로비스가 장기 용선해 운항하는 선박으로, 건조는 중국선박그룹(CSSC) 산하 광저우조선소가 맡았다. 설계도 중국 상하이선박연구설계원이 담당했다. 이에 중국 매체들은 이번 선박 인도를 두고 "중국 고급 선박 제조 능력이 새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나섰다.
◇ 차종 맞춘 '가변 데크'와 흔들림 잡는 '고박'이 핵심
1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PCTC는 완성차와 트럭, 건설기계 등을 싣는 전용 운반선이다. 배 내부는 층층이 쌓아 올린 주차 빌딩과 비슷하다. 컨테이너선처럼 화물을 상자에 담아 크레인으로 싣는 방식이 아니다. 선미(선박 뒤쪽)에 설치된 경사로(램프)를 통해 차량을 직접 운전해 배 안으로 넣는데 여러 층의 데크에 주차하듯 싣는다. 멀리서 보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대형 주차장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렇다고 내부 구조가 일반 주차장처럼 단순한 건 아니다. 최근 자동차운반선에는 승용차뿐 아니라 배터리 무게 탓에 중량이 나가는 전기차와 수소차,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버스, 트레일러, 건설장비가 함께 실린다.
글로비스 리더호가 14개 데크 가운데 5개 층을 높이 조절이 가능한 가변 데크로 만든 것도 이런 다양한 차량을 한 번에 싣기 위해서다. 규격화된 내연기관 승용차 위주로 촘촘히 싣던 기존 PCTC와 달리 차종마다 다른 높이와 무게에 맞춰 데크 간격을 조절해 적재 유연성을 높인 것이다. 상하이선박연구설계원 측은 기존 9000대급 선박 대비 차량 데크 면적을 16~20% 늘리면서 차량 1대당 운항 연료비는 8% 이상 낮췄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운반선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고박'이다. 고박은 차량이 움직이지 않도록 묶어 고정하는 작업이다. 배는 항해 중 파도와 바람을 만나면 앞뒤, 좌우, 위아래로 끊임없이 흔들린다. 차량이 조금이라도 밀리면 옆 차와 부딪히거나 차체가 손상될 수 있다. 한 배에 1만대 넘는 차량이 실리는 초대형선에서는 이 작은 움직임도 대규모 화물 손상이라는 큰 사고로 직결된다.
초대형 PCTC의 기술적 난도는 여기서 갈린다. 초대형 PCTC는 단순히 차를 많이 싣는 배라기보다 많은 차를 빠르게 싣고 안전하게 고정하는 정밀한 물류 설비에 가깝다. 전기차처럼 상대적으로 무거운 차량이 늘고 대형 상용차와 건설 장비까지 함께 실리면서 층별 하중 분산과 고박 작업은 훨씬 복잡해졌다. 적재 대수보다 실제 운송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차량을 어느 층에 배치하고 어떤 방식으로 고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광저우조선소는 이를 뒷받침하는 초대형 선체 정밀도를 확보하기 위해 얇은 강판(박판)의 열 변형 제어 기술을 동원했다. 선체 중량을 줄이면서 주차장 층수를 늘리려면 얇은 철판을 사용해야 하는데 철판이 용접 열에 뒤틀리면 차량이 층간을 이동하는 로로(Ro-Ro) 장비와 유압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
광저우조선소 측은 "수많은 박판 구조의 열 변형을 제어하고 선체 정밀도를 오차 없이 관리해 핵심 통로인 로로 장비와 유압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선박 내부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추진 방식과 항해 중 여유 동력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1450kW(킬로와트)급 영구자석 축발전기를 탑재했는데, 이 핵심 설비 또한 중국선박그룹 산하 704연구소가 개발을 맡았다.
◇ 車 수출 폭증이 낳은 1만대급… 건조 시장 선점한 中
1만대급 PCTC가 탄생한 건 수출할 차량에 비해 자동차 운반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2021년부터 중국 전기차와 완성차의 장거리 해상 수출이 빠르게 늘면서 자동차 운반선 부족이 심해졌다. 선복 부족으로 운임이 치솟자 선사들은 2021~2024년 초대형 PCTC 발주에 나섰고, 이 물량의 상당 부분을 중국 조선소가 흡수했다. 해운 리서치업체 AXS마린에 따르면 2023~2028년 인도됐거나 인도 예정인 PCTC 276척 가운데 79.4%인 219척이 중국 조선소 물량이다.
이번 글로비스 리더호를 건조한 광저우조선소는 7000대급 선박을 반복 건조하며 공정 경험을 쌓은 뒤 8600대급을 거쳐 단숨에 1만800대급으로 선박 크기를 키워 시장을 선점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2년 전 컨테이너선 선가가 고점을 기록할 당시 수주를 늘렸으나 이후 점차 고부가 선박인 LNG 운반선 등에 집중하고 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한국 조선사 입장에서 PCTC는 주력 선종이라기보다 선가와 납기 조건이 일치할 때 도크를 채우는 보완 선종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규모 발주 물량이 잇따라 인도되면서 PCTC 시장의 공급 과잉 우려도 나온다. AXS마린은 "지난해부터 신규 발주 계약은 급감한 반면 과거 발주된 선박이 대거 인도되면서 2025년 PCTC 인도량이 사상 최대인 75척을 기록했다"며 "낡은 선박의 폐선 속도가 신조선 인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선복 과잉과 운임 압박이 커질 수 있는 상황으로, 친환경 연료 시스템 탑재와 대형화가 향후 시장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