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한화오션 제공

중동 전쟁 여파로 올 1분기 전 세계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신조 발주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1배 넘게 급증했다. 초반 수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조선소에 집중됐으나, 중국 도크가 빠르게 소진되고 선가가 오르면서 국내 조선소로도 발주가 유입되고 있다. 한화오션은 이 흐름을 타고 올 들어 VLCC 10척을 수주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유조선 호황을 수익성 확보의 기회로 활용하면서도, 장기 전략의 무게 중심은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에 두고 있다.

◇1분기 VLCC 발주 작년 3척→올해 64척

27일 그리스 선박 중개업체 엑스클루시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VLCC 신조 발주는 64척으로, 작년 같은 기간 3척에서 급증했다. VLCC는 국내 하루 소비량에 맞먹는 원유 200만배럴을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선종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이 제한되면서 일부 유조선의 발이 묶여 가용 선박이 줄었다. 항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유조선 단기 용선 운임은 급등했다. 선주들은 개선된 운항 수익성을 바탕으로 선박 확보에 나섰고, 신조 발주도 빠르게 늘었다. 여기에 노후 유조선 교체 수요까지 맞물리면서 올 1분기 유조선은 전체 신조 발주의 약 45%를 차지했다.

초반 발주 물량은 선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조선소에 집중됐다. VLCC는 LNG 운반선에 비해 건조 기술 장벽이 낮고, 고부가 선박 대비 수익성이 떨어져 국내 조선소들이 그동안 적극적으로 수주에 나서지 않던 영역이었다. 중국 민간 조선소 헝리중공업은 올해 1분기에만 VLCC를 38척 이상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조선소 전체로는 올 1분기 선박 399척, 1239만CGT를 수주해 전 세계 수주 점유율 70%를 차지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VLCC 운임과 신조 선가가 동반 상승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대형 유조선 신조 선가는 올해 3월 1억295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6% 올랐다. 선가가 오르자 국내 조선소들도 수주에 나설 유인이 생겼다. 중국 주요 조선소의 건조 슬롯이 2029년 인도 물량까지 상당 부분 채워지면서 선주들 입장에서도 납기를 맞추려면 한국 조선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수요와 공급 양쪽의 사정이 맞아떨어지면서 국내 조선소로 발주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단비 된 VLCC, 韓 조선사 무게중심은 LNG선

한화오션은 올 들어 현재까지 VLCC 10척을 수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척을 수주한 것과 비교하면 2.5배 늘어난 성적이다. 계약 선가도 지난해 척당 1억2900만~1억2970만달러에서 올해 1억3000만~1억3050만달러로 올랐다. 한화오션은 기존 건조 실적이 있는 선형을 재활용하는 반복 선형 방식으로 설계·자재 조달·생산 공정 전반의 효율성을 높여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올해 들어 각각 7척과 4척의 원유 운반선을 수주했다.

한화오션을 비롯한 국내 조선사들은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높아진 VLCC 등 유조선을 선별 수주하면서 고부가가치 대형선 중심의 수주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대형선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을 이어가면서 시장 변동성에도 유연하게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오션의 올해 3월 기준 수주 잔고는 LNG선 63척, VLCC 37척으로 LNG선이 두 배 가까이 많다.

LNG 운반선은 화물창 기술과 극저온 설비 등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선종으로, 선가가 VLCC의 두 배에 달한다. 지난달 기준 LNG 운반선(174K급) 신조 선가는 2억4850만달러로, 대형 유조선(1억2950만달러)보다 92% 비싸다. 실제로 국내 조선 3사의 올해 LNG선 수주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화오션은 올해 LNG선 4척을 수주해 지난해 같은 기간 2척에서 두 배로 늘었다. HD한국조선해양은 1척에서 12척으로, 삼성중공업은 1척에서 6척으로 각각 확대됐다. 업계 관계자는 "유조선 호황으로 수익성을 챙기면서도 중국이 넘보기 어려운 LNG선·친환경 선박에서 기술 격차를 벌리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