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에 따른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중단 사태에도 국내 조선사들의 LNG 운반선 건조·인도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가스 생산 차질로 갈 곳 잃은 선박들이 시장에 풀려 신조선 수요를 꺾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됐으나, 북미 지역의 대규모 신규 프로젝트와 낡은 배들의 교체 수요가 맞물리며 신규 수주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일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는 카타르 프로젝트와 연계된 납기 일정에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선주 측에서 인도를 늦추겠다는 반응은 전혀 없고, 오히려 작년과 비교해 LNG선 주문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LNG선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고 계약 선가도 높게 유지되고 있다"며 "카타르 사태가 수주에 영향을 줄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HD한국조선해양의 경우 지난해 4월 중순까지 한 척도 없었던 LNG선 수주가 올해 들어 12척으로 늘었다. 삼성중공업은 1척에서 6척으로, 한화오션은 2척에서 4척으로 각각 주문이 확대됐다. 전 세계 발주량도 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은 총 39척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6% 증가했다.
◇카타르 불가항력 선언에 수주 취소 우려 확산
LNG선 수주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는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 카타르에너지의 불가항력 선언에서 비롯됐다. 미국·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전 세계 LNG 공급량의 20%를 차지하는 라스라판 지역 가스 시설이 파괴되자, 카타르에너지는 지난달 24일 한국 등 주요 고객사에 장기 LNG 공급 계약 이행 의무를 면제받는 불가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사드 알 카비 카타르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이란 공격으로 수출 생산 능력의 17%를 담당하는 시설이 피해를 입어 완전 복구에는 3~5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 복구에는 약 4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생산 시설 파괴로 가스 물량이 줄어들면서, 당초 이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었던 LNG 운반선 15척이 일감을 잃었다. 시장에서는 이 여파로 최대 40척에 달하는 유휴 선박이 용선(선박 임대)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선박 공급 확대로 용선료가 하락하면 선주들로서는 신조선을 발주할 유인이 줄어든다. 카타르발 LNG 신조선 주문이 취소되거나 인도가 연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카타르는 LNG를 실어 나르기 위해 보유한 선대 113척 외에, 조선소에 98척을 추가로 주문한 상태다. 이 중 70여척이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있다.
◇노후선 교체에 북미 발주 기대까지… "수요 견조"
하지만 우려만큼 충격이 크지 않은 데엔 카타르 선대의 구조적 제약과 대체 수요가 이유로 꼽힌다. 카타르 선대의 주축인 초대형 선박은 선폭 제약으로 북미와 아시아를 잇는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 이 배들이 용선 시장에 아무리 쏟아져도, 앞으로 북미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LNG를 실어 나르는 역할은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업계에선 일감을 잃은 카타르발 LNG 운반선이 일부 시장에 나오더라도 물량이 많지 않고, 대체 수요가 이를 충분히 흡수할 만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여기에 북미 신규 LNG 프로젝트들이 연이어 투자 승인 단계를 넘고 있어 신규 수주 기대도 커지고 있다. 중동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미국 에너지부는 비(非)자유무역협정(FTA) 국가로의 LNG 수출을 적극 허가하는 추세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커먼웰스 LNG 등 북미 지역에서 최종 투자 결정(FID)이 확정되는 프로젝트만 128척 분량의 신규 선박 수요를 창출해 카타르발 유휴 물량을 흡수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중동 리스크에 따른 항로 재편도 잉여 공급 물량을 해소하는 요인이다. 해운사들이 중동을 대체해 미국 걸프 지역에서 아시아로 가스를 수입할 경우 이동 거리는 평균 5500㎞에서 9400㎞로 70%가량 늘어난다. 거리가 멀어지면 동일 물량을 운반하기 위해 더 많은 선박이 투입돼야 하므로 약 10척 분량의 잉여 공급을 상쇄하는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노후 LNG선 교체 수요도 발주를 이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NG선 교체 시기가 도래한 데다 글로벌 친환경 규제 강화가 겹쳐 선사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북미 신규 프로젝트 발주가 본격화하기 전이지만 건조 공간 확보 경쟁이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승한 연구원은 "운항 효율성이 낮은 노후 선대의 평균 폐선 선령이 올해 21.8년 수준까지 낮아져 신조선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며 "카타르 리스크는 국내 조선사들의 릴레이 수주에 제동을 걸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3년 치 일감을 쌓아두고 있는 국내 조선 3사의 2029년 인도 슬롯은 올 2분기 내 소진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