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이 적용된 무기체계를 빠르게 전력화하기 위해 방사청이 '신속시범사업'을 운영하는 가운데 2022년에 참여한 사업자들은 이듬해 개정된 규정의 적용을 받지 못하면서 사업 진척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방사청이 2023년 신속시범사업에 보다 속도를 내기 위해 '시험평가'를 생략했지만, 2022년 참여 사업자들은 이 혜택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방위사업법 45조에 따라 시험평가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국방부 훈령과 충돌한다는 의견이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여기다 개정된 훈령에는 군이 신속시범사업자와 수의계약을 맺는다는 규정이 생겼으나, 2022년 참여업체는 양산 계약을 어떻게 체결해야 하는지 규정된 내용이 없어 전력화까지 추가 시간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17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2022년 신속시범사업에 선정된 시제품 11개 중 현재 군의 소요 결정 후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작성하고 있는 제품은 '대테러 작전용 다족보행로봇' 단 1개다. 경량화 105㎜ 자주포는 각종 절차를 거쳐 군이 소요를 제기했지만, 합동참모본부가 통합개념팀(ICT)을 꾸려 해당 무기체계의 타당성을 또다시 검토하고 있다.
군의 '인정' 결정을 받은 제품은 위의 두 제품을 포함해 4개에 불과하다. 저격용 소총 인공지능(AI) 열상조준경의 경우엔 군이 소요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 외에 '미인정'과 '부분인정' 결정을 받은 제품이 각 1개씩 있고, 다른 제품 5개는 아직도 시범 운용되고 있다.
◇ 양산 전 '시험평가' 단계 생략됐으나, 2022년 사업자에는 미적용
2023년 9월 관련 규정이 개정되기 전 기준에 따르면 신속시범사업사업자로 선정되면 연구개발을 거쳐 시제품을 만들고, 군이 해당 시제품을 시범 운영한 뒤 인정 또는 미인정을 결정했다. 인정을 받으면 군이 소요 여부를 검토, 소요가 결정되면 시험평가를 거쳐 양산에 돌입하는 게 절차였다.
그런데 2023년 9월 국방부 국방전력발전업무훈령 제36조의2 조항이 신설되면서 사업자가 양산 전 시범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에 변화가 생겼다. 해당 조항은 '성능입증시험 결과로 시험평가를 대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산업계에선 군으로부터 인정 결정을 받았음에도 2022년도 신청 사업자는 시범 평가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의 시범운영 납품을 위해 시제품을 이미 제작했고, 군의 인정 결정을 받았음에도 또다시 시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중복 투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방산업체들은 방위사업법 45조를 근거로 시험평가 대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군 당국에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조항은 방산물자의 생산·연구·시제품 생산을 위해 필요한 때에 무상 대부 또는 대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업체들은 이 조항이 정부가 업체들의 기존 시제품을 빌려 시험평가에 활용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라며 시험평가의 대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신속시범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조항이 아니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방위사업법 45조 해석을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어 명확히 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2022년 신속시범사업들 또한 시범 운용이 끝나면 시험평가를 또 해야 하는 상황인데, 추가 시험평가로 인해 전력화 일정이 계속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 2022년 사업자 계약 방법도 미궁… "전력화 지연"
시험평가 문제가 해결돼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바로 양산 계약 체결 방식이다. 2023년 9월 이후 선정된 신속시범사업사업자는 군으로부터 소요가 결정되면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전 사업자의 경우 수의계약을 하는 것인지, 일반 무기획득 사업처럼 새로 공고를 해야 하는지 등 방안 자체가 모호하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2022년 신속시범사업의 경우, 시범 운용 이후 수의계약을 하는지에 관한 규정 자체가 없었는데, 2023년 9월에 '수의계약으로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며 "2022년 사업자의 경우 일반 무기 사업처럼 또 공고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가득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출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일부 제품의 경우 해외 국가에서 문의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출에 있어 핵심은 '자국군의 전력화' 여부인데,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중소 방산업체의 관계자는 "기술 수준이 해외와 유사한 무기체계의 경우 자국군의 운용이 보증 수표"라며 "각 규정의 모호성을 해소하는 방안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방사청은 각종 규정이 충돌하는 문제는 인지하고 있고, 개선하기 위한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방사청 관계자는 "사업을 추진하며 소요군·합참과 긴밀히 협업해 진행 중인 사업들이 군 활용성을 인정받고 소요로 연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