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쟁의권 확보에 나서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항공사 출범 8개월을 앞두고 두 항공사 간 조종사들의 서열을 어떻게 정할 지에 대해 사측과 이견(異見)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파업 등을 준비하는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전날 정기 총회를 열고 쟁의행위 찬반 표결을 진행해 전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 찬성으로 의결했다.
노조는 앞으로 한 달 안에 노동위원회 제소를 거쳐 쟁의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쟁의권을 확보하면 파업·태업 등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쟁의권 확보에 나선 것은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이후 시니어리티(Seniority·서열) 시스템을 어떻게 정할 지를 두고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리티란 항공사 내부의 기수와 연공 서열 등을 뜻하는 용어다. 각 항공사들은 저마다 상이한 조종사 서열 체계를 두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역시 조종사 입사 자격부터 선·후배 판별, 기장 승진 등 여러 측면에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대한항공은 비행 1000시간부터 조종사 입사 자격이 주어지는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300시간을 채우면 입사가 가능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승진과 연봉 등 직급·보상과 관련된 이유 외에도 조종사들은 내부 위계질서가 엄격해 서열 체계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통합을 앞두고 서열 체계 기준을 노사 교섭 항목에 포함할 것을 요구해왔다. 합병 이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의 편입 과정에서 사측이 일방적으로 기준을 변경해 조합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직원 간 서열 순위는 회사의 인사권에 해당하기에 논의 대상이 아니라며 이러한 요구를 거부해 왔다. 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12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지난달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노조는 이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와 김포국제공항 일대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누구를 위한 합병인가', '옆집 직원만 신경 쓰는 회사'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교대로 농성 중이다.
노조의 쟁의권 확보 이후 노동위원회 조정 신청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동위원회 조정도 결렬돼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하더라도 전면 파업은 불가능하다. 항공운수사업은 철도·병원 등과 함께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전면 파업이 어려워도 지상 이동 지연 유발 등 조종사들이 합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면서 "다만 조종사들의 강경 대응이 승객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조속한 합의가 이뤄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