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LNG 운반선이 스페인 빌바오항을 떠나고 있는 모습./AFP연합뉴스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해상 물류난이 초대형 유조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대형 선박 수요를 끌어올리며 조선업계가 훈풍을 타고 있다. 올 1분기 국내 조선사들은 중국 조선소들이 유조선으로 도크를 채우는 사이 LNG 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 위주로 선별 수주를 이어갔다. 수년째 수익성 중심의 수주 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조선 3사의 올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역대 최대 수준인 2조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1분기 초대형 유조선·LNG선 발주 급등

9일 영국 조선 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1758만CGT(표준선환산톤수)로 전년 동기 대비 40.3% 증가했다. 척수로만 보면 554척으로 작년 1분기와 동일하지만 선박의 크기와 건조 난도를 반영한 CGT 기준으로는 발주 규모가 크게 늘었다. 똑같은 개수의 배를 주문하더라도 초대형 유조선이나 대형 LNG 운반선 등 덩치가 큰 선박 위주로 수요가 몰렸다는 의미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가장 먼저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수요가 폭증했다. 유조선들의 발이 묶이자 운임이 치솟았고, 선사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 번에 원유 2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 VLCC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VLCC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그보다 한 체급 아래 선종인 수에즈막스급 원유 운반선 발주도 늘기 시작했다. 실제 올해 1분기 전 세계 유조선 발주량은 3억2500만DWT(재화중량톤수)로 전년 동기 대비 532% 폭증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발주된 물량의 72%가 1분기에 집중된 것이다.

LNG 운반선 주문도 급증했다. 올 1분기 대형 LNG 운반선 발주량은 35척으로 전년 동기(3척)보다 약 11배 늘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발주된 38척의 92%가 석 달 만에 쏟아진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카타르 가스전의 LNG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자 글로벌 에너지 수입국들의 대체 공급원 확보 수요가 커진 영향이다. 미국산 LNG를 아시아로 운송하는 거리는 카타르산보다 1.7배가량 길어, 동일한 물량을 나르는 데 더 많은 선박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VLCC는 中 조선소로, 韓은 고부가 선박 위주 수주

급증한 대형 선박 수요를 두고 한국과 중국 조선소의 선택은 갈렸다. 중국이 VLCC 등 유조선 위주의 물량을 흡수하는 사이 한국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더 높은 LNG 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을 우선 수주했다. 지난달 기준 17만4000㎥급 LNG 운반선 신조선가는 2억4850만달러로 VLCC(1억2950만달러)의 약 두 배에 달한다.

KB증권에 따르면 지난 6일 집계 기준 한국의 신규 수주 선종 구성은 LNG 운반선이 49%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고, 유조선(30.2%), 컨테이너선(13.4%)이 뒤를 이었다. 반면 중국은 유조선 비중이 59.9%로 가장 높았고, 벌크선(24.4%), 컨테이너선(8.1%) 순으로 수주가 이어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공격적으로 수주에 나서며 빈 도크를 채우는 데 집중했다"며 "한국 조선사들은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선박 계약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선가가 오름세를 이어가는 최근 고부가 선박 위주로 계약에 돌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건조 비용만 놓고 보면 한국 선박이 10~20% 비싸지만 연료 효율 등 운항 전반의 총비용을 따지면 한국 선박이 더 경제적이라고 선사들을 설득하며 고부가가치 수주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선별 수주 결실… 1분기 영업익 2조원 돌파 목전

수년째 이어온 국내 조선사들의 선별 수주 전략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1분기 국내 조선 3사의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 평균)는 지난 8일 기준 1조9157억원으로 집계됐다. 실제 성적은 이를 웃돌 것이란 전망이 시장에서는 우세하다. 증권사들은 HD한국조선해양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이 1조1838억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오션의 영업이익은 3833억원 안팎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63%, 삼성중공업은 3486억원 안팎으로 약 52%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곳간도 두둑하게 차 있다. 올해 들어 HD한국조선해양은 총 68척, 72억5000만달러어치를 수주했다. 삼성중공업은 16척(31억달러), 한화오션은 15척(28억4000만달러)을 수주해 3사 합산 수주액은 131억9000만달러 규모에 달한다. 한국 조선사들의 전체 수주 잔량은 지난달 말 기준 3635만CGT로 3~4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조선사들은 양호한 수주 실적과 넉넉한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앞으로도 저가 수주에 나설 유인이 제한적"이라며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조선업은 타 제조업 대비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체력을 갖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