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2주간 휴전 합의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국내 주유소 업계가 물량 확보를 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오는 9일 3차 석유 최고 가격제 발표를 앞두고, 이번 유가 급락으로 석유 제품 가격을 전망하는 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선 2주 치 재고만 확보한 채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의견이 많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다. 8일 오후 3시 10분 현재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15.46% 급락한 배럴당 95.49달러에 거래 중이다.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14.24% 내린 배럴당 93.71달러에 형성됐다. WTI와 브렌트 선물 가격이 100달러를 밑돈 것은 지난 2일 이후 처음이다.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주유소 업계에선 석유 제품을 얼마나 주문할지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3차 석유 최고 가격제 발표를 앞두고 향후 제품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 예상해 최대한 많은 재고를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지만, 이런 전망이 뒤바뀐 것이다. 이날 주유소 운영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재고 주문을 '도박과 같다'고 비유한 글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 자영 주유소 운영자는 "3차 석유 가격은 오를 거라고 보고, 우선 2차 가격으로 2주 치만 미리 채워뒀다. 계속 가격이 오를 것 같아 풀(가득)로 채우려 했는데, 4차 가격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오전에 일부 물량은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간 국제 석유 제품 가격 상승세를 감안하면 3차 최고 가격도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정부는 이전 최고 가격에 국제 석유 제품 가격 변동률을 적용해 최고 가격을 산정한다. 오피넷에 따르면, 국내 석유 제품 가격 산정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휘발유 가격은 지난달 23일 배럴당 최고 157.22달러까지 올랐고, 최근 일주일은 130~140달러 선에서 움직였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누른 상황에서 국제 유가 추이를 고려해 3차 최고 가격을 더 올리기 어려울 것이란 일부 의견도 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3차 최고 가격 수준은 시장 상황과 최근 유가 흐름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주유소 업계는 최고 가격제 시행으로 경영 부담이 커졌다고 호소해왔다. 상대적으로 제품 공급가가 저렴한 정유사 직영, 정부 상표인 알뜰 주유소와 가격 경쟁을 벌이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전쟁 발발 직후 정유사에서 비싸게 준 물량을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싸게 팔면서 손해를 봤다는 사업자도 있다.
다른 자영 주유소 관계자는 "오늘 한 손님은 '국제 유가 떨어졌는데 기름값은 왜 안 내렸냐'고 물었다"며 "휘발유, 경유 모두 1950원 이하에 팔아도 평소 대비 손님이 절반 정도로 떨어지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