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산 업계가 자주포, 전차의 '심장'인 파워팩(엔진+변속기)을 기존 디젤 중심에서 전기모터 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하이브리드 엔진은 소음과 발열이 적어 적에게 들킬 가능성이 작고, 전자식 시스템이라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현하는 데도 유리하다. 미국이 올해 하이브리드 전차 시제품을 일선 부대에 배치하는 등 앞서 나가고 있어 한국도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올해부터 K9 자주포의 하이브리드 파워팩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K9 자주포 디젤 엔진 국산화에 성공한 STX엔진이 기존 엔진에 전기 모터를 결합하는 작업을 담당하고, SNT다이내믹스가 전용 변속기 개발을 맡았다. 체계종합업체(최종 조립 업체)인 한화에어로는 이를 K9 자주포에 장착하게 된다. 배터리를 담당할 기업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K9 자주포는 디젤 엔진만으로 1000마력의 힘을 낸다. 여기에 추가될 전기 모터 용량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250㎾ 이하급이 거론된다. 이 경우 최대 출력은 1200~1300마력까지 확대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K9 자주포를 시작으로 레드백(장갑차) 등 다른 무기 체계까지 확장해 적용할 수 있다"며 "2029년 시제품 제작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저소음과 저발열이다. 기존 디젤 엔진은 시동을 끄면 전력 공급이 끊겨 통신이나 레이더를 쓸 수 없게 된다. 전력을 쓰려면 엔진을 계속 켜둬야 하고, 이때 발생하는 엔진 소음과 열 때문에 적에게 위치가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엔진을 켜지 않고 배터리만으로 움직이면 무성(無聲) 대기가 가능해지고, 발열도 줄어 생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며 "연료 효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미래 전장의 패러다임인 유·무인 복합 체계를 구현하는 데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젤 엔진도 유·무인 복합 체계가 가능하지만, 이는 전자식이 아니라 별도의 장비를 추가하는 기계식"이라며 "하이브리드로 바꾸면 완전한 전자식 유·무인 복합 체계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전기 모터와 대용량 배터리를 갖춘 만큼 인공지능(AI) 시스템과 첨단 통신 장비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도 있다.

전차용 수소 기반 하이브리드 엔진도 개발 중이다. 현대로템(064350)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와 함께 '대용량 수소연료전지 기반 전동화 기술' 과제를 수행 중이다. 디젤 엔진과 수소연료전지, 전기 모터를 결합해 2035년까지 최대 1500마력을 내는 K2 전차용 수소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시제품을 내놓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토대로 2040년에는 디젤 엔진까지 빼고 순수 수소연료전지로만 돌아가는 전차를 만드는 것이 현대로템의 구상이다.

미 육군 신형 하이브리드 전차, M-1E3./GDLS 제공

미래 전장에서 하이브리드 엔진이 필수 부품으로 떠오르는 만큼, 해외 방산 강국은 한국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다. 지난해 4월 랜디 조지 미 육군 참모총장은 "당초 예상했던 일정(2030년 배치)을 3분의 1로 단축, 24개월에서 30개월 이내에 신형 전차를 병사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신형 전차는 'M-1E3'로, 디젤 엔진과 전기 모터를 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연료 효율이 50% 개선되고, AI 응용 프로그램, 로봇 차량과의 페어링, 발열·전자 신호 저감 장치 등이 탑재된다.

미 육군은 신형 전차 시제기 4대를 올해 중 일부 부대에 배치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미래 지상전의 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수단"이라며 "적의 눈과 귀를 피해 은밀하게 기동하는 차세대 전투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기초 공사와 같아 군을 비롯해 민간에서도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