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말~5월 초에 발표할 올해 1분기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라 정유사들이 고민에 빠졌다. 국내 정유 4사의 1분기 실적은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가 상승한 영향으로 재고평가이익이 상승해 영업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사들은 재고평가이익이 서류상에 반영되는 이익일 뿐인 데다 추후 유가가 떨어질 경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데, 중동 사태로 에너지 수급난이 고조된 상황에서 정유사의 실적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면 횡재세 부과 등 정유사를 타깃으로 한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한다.
2일 복수의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정유사의 재고평가이익이 상승, 실적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난다"며 "최고가격제 등으로 정유사의 운신 폭이 좁아진 상황에서 횡재세와 같은 추가적인 정책이 나올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유사의 재고평가이익은 국제유가가 오르면 증가한다. 유가가 오르면 기존에 사뒀던 원유 가치가 덩달아 상승하기 때문이다. 정유사가 중동 등지에서 원유를 수입해 국내에 들여오기까지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정유사가 원유를 도입해 정제, 판매하기까지도 보통 한두 달의 시차가 있다.
재고평가이익이 늘면 영업이익은 증가한다. 중동 사태 이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기에 장부상 이익인 재고평가이익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108.9달러, 브렌트유는 101.16달러, WTI는 100.12달러에 거래됐다. 전쟁 직전인 2월 27일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71.24달러, 브렌트유는 72.48달러, WTI는 67.02달러였다.
보통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마다 국내 정유사의 재고평가이익은 수백억 원 늘어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에쓰오일의 예상 영업이익은 5619억원, SK이노베이션의 예상 영업이익은 449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보다 에쓰오일 영업이익은 1900억원, SK이노베이션은 2130억원 늘어날 전망이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의 실적도 유사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증권가에서 예상한 실적 전망에 아직 중동 사태 이후 상황 전체가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1분기 영업이익은 현재 나온 예상보다 더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이 터지기 전 정제 마진이 좋았던 점도 정유사의 1분기 실적 개선 요인이다. 정제 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운반비 등 생산비를 뺀 것으로 정유사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기 이전인 올해 1~2월 정제 마진은 배럴당 9.1달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정제 마진이 급등했던 2022년을 제외한 2010~2025년 평균치(5.8달러)를 웃돌았다. 정유사의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정제마진은 배럴당 4~5달러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동 사태 이후인 3월에는 운임 부담이 늘면서 정제 마진이 1~2월보다 줄어들었겠지만, 전체적으로 1분기 정제 마진이 괜찮은 편"이라며 "정유사의 1분기 실적이 좋을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유사들은 1분기 실적이 상당히 좋게 나올까봐 오히려 걱정하는 상황이다. 재고평가이익 상승분에 정제 마진 개선 폭을 더하면 현재 증권가 예상보다 좋게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결국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들어 영업이익에 좋지 않고, 고유가가 지속되지도 않을 것이기에 1분기의 이익은 결국 나중에 재고평가손실로 빠져 나갈 것"이라며 "정유사가 영업손실을 기록할 때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영업이익이 좋을 때면 횡재세가 언급되는 상황이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횡재세는 특정 기업이 예상보다 과도한 이익을 얻었을 때 추가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국제유가가 상승할 때 정유사의 영업이익이 늘어나면 '국민 부담은 커지는데 정유사는 돈을 번다'라는 여론이 생기면서 정치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정책이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1일 정유사 등을 겨냥해 초과 이익에 추가로 법인세 20%를 부과하는 법인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주식 시장에 상장된 석유 정제업자, 액화석유가스(LPG) 집단 공급 사업자가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직전 3개년 평균보다 5억원 이상 많으면 초과 소득에 법인세 20%를 추가 과세하는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