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에 화물선들이 지나가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통행료가 부가세처럼 원가에 굳어지면 전쟁이 끝나도 운임과 유가는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자칫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1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움직임을 두고 이같이 경고했다. 전 세계 해상 석유 공급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운송로에 이른바 '톨게이트 비용'이 붙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물가를 자극하는 비용 쇼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연 국제 해협에 국가가 통행료를 강제하는 건 현대 해운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척당 200만달러… 전례 없는 '해협 통행세'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이란 국영방송(IRIB) 등에 따르면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회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척당 200만달러(약 30억원) 수준의 요금을 징수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에는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이란 리알화로 통행료를 매기는 과금 체계를 공식화하고, 미국·이스라엘 등 제재 국가와 연관된 선박의 통항을 원천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란 의회 민사위원장인 모하마드레자 레자에이 쿠치는 "호르무즈에서 우리가 안전을 보장하는 만큼 선박이 통행료를 내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호르무즈에서 통행료를 징수하는 건 국제법에 배치되지만, 이란은 이를 주권 행사로 규정하고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자연 해협에서 각국 선박의 통과통항권을 보장하며 연안국의 일방적인 요금 부과를 금지한다.

이란은 협약 비준국은 아니지만, 통과통항권은 국제 사회에서 관습법으로 인정돼 왔다. 그러나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제법의 기저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만큼 이란이 비준국이 아니라는 점을 내세워 실력 행사로 통행료 징수를 강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돈을 지불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도 포착되고 있다. 해운 전문 매체 로이드리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선박 20척 이상이 이란이 새로 설정한 우회 통로를 이용했는데, 이 가운데 최소 2척은 통행료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한 척이 지불한 금액은 약 200만달러로 알려졌다.

이번 전쟁을 거치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 서방을 압박할 강력한 카드라는 점을 확인한 만큼, 이를 수익 창출 도구로 활용하려는 셈법도 읽힌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는 하루 평균 2000만배럴로,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10척 분량이다.

CNN이 분석한 결과, 척당 200만달러를 징수하면 원유만으로 하루 2000만달러(약 300억원),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하면 월 8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는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에서 거둬들이는 월 수익에 맞먹는 규모로, 경제 제재로 자금줄이 막힌 이란에겐 핵심 대체 수입원이 될 수 있다. 다만 주요 원유 수요국의 반발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통행료 체계가 실제로 정착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위성사진. 사진 왼쪽이 호르무즈 해협, 아래는 오만 북부 해안이다./AFP연합뉴스

◇징수 대기 비용에 보험료까지 추가될수도

업계에선 통행세가 부가세처럼 기본 원가로 굳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척당 200만달러의 통항료는 VLCC가 운반하는 원유 화물 가치의 1~2% 수준으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회성 지출에 그치지 않고 운임과 화물 가격 전반을 밀어 올리는 구조적 비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톨게이트 비용이 아니라 해운 산업의 기초 비용을 높여 실생활의 고유가 고착화로 직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하루 2000만배럴)는 인근 국가 우회 송유관 용량(하루 350만~550만배럴)의 약 4~6배에 달해 대체 경로가 사실상 없다.

통행료 징수 절차 자체도 해상 물류의 병목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란 군 당국에 운항 정보를 제출하고 검문을 받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통항 승인을 받기 위해 선박들이 해상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선료(선박 지연 배상금)는 불어나고 시장 전체의 가용 선복량은 줄어든다.

이는 보험료 폭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본다. 글로벌 보험업계는 무장 군대의 통제를 최고 위험 요인으로 산정해 평시 선박 가치의 0.25% 미만이던 전쟁 위험 할증 보험료를 최근 1.5~3%까지 올렸다.

선박 가치가 1억달러인 유조선이라면 통행료 200만달러 외에도 150만~300만달러(약 23억~45억원)의 추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체선료와 운임 상승분까지 더하면 1회 운항 시 부과되는 물류 부대 비용이 수백만달러 단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 전반에 번지는 원가 압박… "물가상승 고착화 우려"

거미줄처럼 얽힌 물류 부대 비용의 폭등은 원유 수입량의 70%를 호르무즈에 의존하는 한국 산업계 전반의 원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이미 석유화학 업계는 플라스틱·섬유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납사) 수입 가격이 전쟁 후 50% 급등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석유화학사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과 나프타의 가격 차이)는 손익분기점인 톤당 250~300달러(약 37만~45만원)를 밑도는 100~200달러(약 15~30만원) 선에 머물며 영업적자가 고착화된 상태다. 해상 물류비가 나프타 수입 단가를 한 번 더 밀어 올리면 적자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영업 비용의 3분의 1을 항공유에 의존하는 항공업계와 선박 연료유 부담이 큰 해운업계 역시 원가 압박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통행료가 고정비처럼 굳어질 경우 유가 하방이 막히면서, 전력비·물류비 비중이 높은 제조업 전반의 비용 부담도 한층 커지게 된다.

산업 전반으로 번진 비용 증가는 결국 실생활 물가 전반을 밀어 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0.4%포인트 상승한다.

업계 관계자는 "통행료가 부가세처럼 고정비로 붙으면 실질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안팎에서 장기간 고착화할 가능성도 있다"며 "이 통행세는 석유화학, 운송, 일반 제조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의 기초 원가를 높이고 최종적으로는 밥상 물가와 소비재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밀어 올리는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