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김모(48)씨는 1일 오전 유럽 여행을 위해 항공권 예약 내역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이탈리아 여행을 위해 구매한 아시아나항공 일반석 왕복 항공권 가격이 보름여 전인 지난달 13일 184만6000원에서 이날 234만5000원으로 약 50만원이 뛰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달 항공권을 결제할 때도 미국과 이란 전쟁 때문에 앞으로 요금이 많이 오를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상승 폭이 커 놀랐다"며 "환율도 계속 오르고 있어 당분간 해외 여행을 나가려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1일부터 각 항공사들이 항공권 가격에 적용하는 유류할증료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항공사들은 국제 항공유 가격에 따라 매달 유류할증료를 산정해 반영하는데,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뛰면서 4월 기준 할증료가 급등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인천을 출발해 미국 뉴욕과 댈러스, 보스턴, 시카고, 애틀란타, 워싱턴 D.C. 등으로 가는 미주 노선의 편도 기준 유류할증료를 지난달 9만9000원에서 이날부터 3배가 넘는 30만3000원으로 올렸다. 왕복 항공권 기준으로 보면 이날부터 유류할증료만 60만6000원이 붙는 셈이다.
다른 노선들의 항공권에 적용되는 유류할증료도 일제히 올랐다.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서부로 가는 노선과 런던, 파리, 로마 등 유럽 노선의 편도 기준 유류할증료는 7만9500원에서 27만6000원으로 상승했다.
이용객이 많은 동남아 노선의 경우 인천에서 방콕, 푸켓, 싱가포르, 호치민, 나트랑, 괌 등으로 가는 노선의 유류할증료가 3만9000원에서 12만3000원으로 올랐다.
아시아나항공도 이날부터 인천에서 미주, 유럽으로 가는 노선의 유류할증료를 7만8600원에서 25만1900원으로 인상했다. 인천~푸켓, 싱가포르 노선은 4만6600원에서 14만7900원, 인천~방콕, 호치민, 나트랑, 치앙마이 노선은 4만800원에서 12만7400원으로 각각 올렸다. 대부분의 노선에 적용되는 유류할증료가 전달보다 3배 넘는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저비용항공사(LCC) 역시 이날부터 크게 오른 유류할증료를 적용했다. 유류할증료를 매달 미국 달러화로 정해 반영하는 제주항공의 경우 싱가포르, 발리, 바탐 노선의 편도 기준 할증료를 22달러에서 68달러로 올렸다. 방콕, 치앙마이, 호치민 등으로 가는 노선은 20달러에서 60달러로 인상됐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노선의 수요는 대부분 저렴하게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인데, 왕복 기준으로 30만원 가까운 유류할증료가 붙는다면 비용 부담이 크게 느껴질 것"이라며 "미주, 유럽 뿐 아니라 대부분의 해외 노선 이용객 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음 달부터 유류할증료가 더 큰 폭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유류할증료는 발권 두 달 전 16일부터 한 달 전 15일까지 싱가포르 현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항공유의 평균 가격으로 산정된다. 이날부터 적용된 유류할증료는 2월부터 지난달까지 거래된 항공유 가격을 기반으로 매겨진 것이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2월 16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싱가포르 현물 시장에서 거래된 항공유의 평균 가격은 갤런당 3.27달러였다. 이 기간의 가격은 지난 2월 말부터 시작된 미국과 이란의 전쟁 여파가 절반 정도 적용된 수치다.
다음 달 국내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에 반영되는 지난달 16일부터 현재까지의 항공유 가격은 전쟁이 진행되는 기간과 겹친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함에 따라 항공유 역시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다음 달 유류할증료가 이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기준 싱가포르 현물 시장의 항공유 가격은 갤런당 5.33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가격이 이달 15일까지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유류할증료는 더욱 오를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다음 달 대한항공의 미주 노선 왕복 항공권 유류할증료가 100만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유류할증료 상승으로 항공권 가격이 크게 오름에 따라 당분간 항공사 여객 수요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여러 항공사들은 국제선 노선과 운항편을 감축하는 등 대책에 나선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31일 전 직원에게 보낸 공지를 통해 이달부터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고, 유가에 따른 단계적 대응 조치 등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5일부터 비상경영에 들어간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까지 중국, 캄보디아 등 국제선 4개 노선의 항공편을 왕복 기준 총 14회 감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