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을 중국이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 현장에 특화된 피지컬 인공지능(AI) 생태계를 구축하고 '돈 버는 AI 로봇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이 세계 1위의 로봇 밀도를 기록하면서도 정작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는 주도권을 쥔 국내 기업이 전무한 만큼, 실증 데이터 확보와 규제 혁신이 향후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진단이 잇따랐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피지컬 AI 시대 로봇 기술의 발전과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 정책 토론회에서 최리군 현대차 로보틱스랩 상무는 "중국 로봇 기술이 앞서 있는 이유는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 팔아보고 1년 뒤 어디가 고장 나는지 확인하는 대량 생산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면 국내 스타트업들은 실제 제조 및 양산 경험이 부족해 제품 스펙과 품질 기준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실증 경험의 결핍이 중국·미국 등과의 로봇 격차를 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한국은 근로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밀도가 1220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정작 로봇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박동일 한국기계연구원 첨단로봇연구센터장은 "과거부터 국내 제조업에서 로봇 활용도는 높았으나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시장 점유율을 보면 국내 로봇 기업은 전혀 없다"며 "대부분 일본, 미국,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 국내 로봇 생태계를 확보해 나가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지컬 AI 시대의 성패를 가를 핵심으로 현장 실증 데이터 확보와 '로봇건비(로봇과 인건비의 합성어)' 절감을 꼽았다. 이규빈 GIST 인공지능연구소장은 "과거 선진국이 높은 인건비 때문에 제조 시설을 해외로 이전했지만, 앞으로는 값싼 로봇건비를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가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테슬라가 자사 차량을 출시해 주행 데이터를 모아 자율주행 시장을 주도하게 됐듯, 우리 기업이 AI 로봇 제품을 출시해 산업 현장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낡은 규제 환경이 이 같은 데이터 기반 혁신의 장벽이 되고 있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이 소장은 "만약 국내에서 테슬라형 사업을 시도했다면 자율운행 허용 제한이나 주행 영상 업로드 제약, 책임 규정 불명확 등으로 시장에서 퇴출당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병목의 본질은 데이터이고, 규제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로봇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생겨야 인재도 자연스럽게 몰리는 만큼, 인재 양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돈 버는 로봇 기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초기 시장 창출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과 연구 규제 개선 요구도 이어졌다. 최 상무는 "로봇에도 보조금이 있으면 생태계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고,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 로봇을 직접 활용하면 국내 기업들이 수요처가 생겨 기술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시대에 맞지 않는 연구·개발(R&D) 관행이 로봇 기술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미국과 중국은 핵심 분야에 수많은 연구자가 붙어서 같은 주제의 연구를 두고 경쟁하지만, 한국은 국가 R&D 기획 시 예산 중복을 막는다는 명목의 '중복성 검토'를 통해 동일 분야 연구를 배제하고 있어 선진국에 뒤처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