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면서 고려아연의 미국 통합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인 '크루서블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최 회장을 비롯한 리더십이 유지돼야 미국 제련소 건설을 비롯한 주요 사업이 차질 없이 수행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24일 고려아연의 제52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은 7명의 이사 후보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찬성표(1560만8388표)를 얻으며 사내이사에 재선임됐다.
고려아연은 이사 선임 안건에 앞서 선임 이사 수를 결정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영풍·MBK파트너스 측의 6인 선임 안을 부결하고, 최 회장 측이 제안한 5인 선임의 건을 승인했다.
영풍 측은 이번 주총을 통해 임기가 만료된 최 회장 측 이사진(최윤범·정태웅·황덕남·김도현·이민호)을 최대한 교체해 이사회 구도를 바꾸겠다는 계획이었다. 현재 주총 이전까지 최 회장 측 11명, 영풍 측 4명였던 이사회 구성을 바꿔 최 회장 측이 과반을 차지할 수 없도록 해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강화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신규 이사 선임 수가 5명으로 줄었고, 최 회장과 함께 고려아연 이사회가 제안한 황덕남 사외이사도 재선임되면서 구도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고려아연은 이날 최 회장과 황 이사를 포함해 미국 전쟁부와 합작 법인의 제안 이사인 월터 필드 맥라렌 기타비상무이사와 영풍 측 제안 이사인 최연석 기타비상무이사, 이선숙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7명, 영풍 측 5명, 최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꼽히는 크루서블 조인트벤처(JV) 측 1명으로 재편됐다. 나머지 이사회 한 자리는 최 회장 측이 제안한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이 부결되면서 공석으로 남았다. 고려아연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골자로 한 개정 상법이 시행되는 9월까지 새 감사위원을 선임할 전망이다.
다만 분리 선출 감사위원 선임은 주주별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룰이 적용되는 만큼 지분이 분산된 최 회장 측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날 감사위원 선임안 의결에서도 기존 사외이사인 김보영 감사가 선임됐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이 사실상 이사회 과반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와 함께 약 미국 현지 제련소 건설에 11조원을 투자하는 크루서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고려아연은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고려아연은 앞서 주주서한을 통해서도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경영 능력을 꾸준히 입증한 현 리더십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민연금 등이 주총에 앞서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면서 최 회장을 비롯한 이사 선임 안건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해 최 회장이 계속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지분 5.20%를 보유한 주요 주주인데, 지난 19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회의를 통해 최 회장 선임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 선임 이후 고려아연의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추진과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과정에서의 기업가치 과대 계상 의혹,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손실 논란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영풍 측은 이날 주총을 마친 후 최 회장 측을 견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풍은 입장문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최 회장 측이 이사회 과반을 유지했지만, 과거 4대 11로 기울어졌던 구도가 8대 5로 좁혀졌다"며 "향후 모든 의사 결정 전반에서 실질적인 견제와 검증이 불가피해졌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주총에 상정됐던 안건 가운데 분기 배당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과 이사회 소집 통지를 회일 전 3일로 연장하는 안건은 가결됐다. 이사 보수 한도를 10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승인하는 안건도 통과됐다.
이 밖에 주주 제안으로 상정된 나머지 안건은 부결됐다. 영풍 측은 앞서 신주 발행 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도입하기 위한 정관 변경의 건, 액면 분할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 집행임원제도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 주총 의장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 등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