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의 미래 전력 체계인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이 '반쪽짜리'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현대로템이 방위사업청의 평가·절차 진행 방식에 반발하고 있는 와중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경쟁자 없이 단독으로 마지막 평가 관문을 통과하면서다. 공정성 논란으로 사업 자체가 유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방사청이 사업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1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이 육군 다목적 무인차량 구매 사업의 성능확인평가를 경쟁업체 없이 단독으로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번 평가는 최고속도, 항속거리 등 6개 항목(A형 평가항목)에 대해 방산업체가 제시한 성능을 상대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 3일부터 약 3주간 실물 평가로 진행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다목적 무인차량은 육군 미래 전력 체계인 '아미 타이거(Army Tiger 4.0)'의 핵심 전력이다. 보병부대원의 전투 효율성을 높이고, 작전 지속 지원을 위한 감시·타격과 물자 수송을 지원한다. 책정된 예산은 496억원으로 당장은 사업 규모가 크지 않지만, 향후 2·3차 사업으로 확대될 수 있어 업계의 관심이 컸다. 지난 2024년 4월 방사청이 입찰 공고를 냈고, 한화에어로와 현대로템이 도전장을 냈다.

◇ 평가 방식부터 공정성 논란… 장비 반출까지

방사청은 지난해 6월 시험 평가와 가격 협상을 끝내고 계약까지 체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평가 방식부터 혼선이 빚어졌다.

방사청은 지난해 4월 두 업체에 성능확인평가에선 2024년 입찰 당시 각각 제출한 제안서에 기재한 수치까지만 성능을 충족하면 된다고 통보했다. 제안서 제출 이후 1년의 시간이 있었던 만큼 성능이 향상됐을 수도 있지만, 시험에서 제안서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해도 가점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로템은 동일 조건에서 최대 성능을 다시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성능확인평가 기준 변경에 대해 "방사청도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시험 문제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사청은 결국 실물 시험에서 발휘하는 최고 성능을 확인하는 것으로 평가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한화에어로도 현대로템과 방사청의 결정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방사청과 두 업체는 지난해 3월부터 6개 항목의 성능 검증 방식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지난해 3월 방위사업청 주관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R&D캠퍼스에서 열린 '제7회 다파고(DAPA-GO) 2.0 소통간담회'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다목적무인차량 '아리온스멧'(왼쪽)'이 전시돼 있는 모습./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하지만 또 다른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한화에어로와 현대로템은 방사청 요구에 따라 시험에 쓰일 시제품을 각각 두 대씩 제출했는데, 이 중 한화에어로의 시제품 한 대가 반출된 것이다. 밖으로 나간 시제품은 방사청이 지난해 3월 한화에어로 대전 R&D 캠퍼스에서 개최한 '다파고' 행사에 전시됐다.

한화에어로는 방사청과 협의해 정식 절차를 밟아 반출됐다고 했지만, 시비를 피하긴 어려웠다. 현대로템은 "한화에어로는 2대 중 1대를 반출해 1년이 넘도록 반납하지 않았다"며 "현재 상황에선 차량의 공정한 성능 평가를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시제품이 똑같은 만큼 소프트웨어 조정만으로 성능 변경이 가능하고, 공개돼 있던 시험 장소에 맞춰 모의 주행 등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로템 측의 설명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한화에어로는 "방사청에서 민간 전문가를 통해 정밀 검증이 진행됐으며 '변경 사항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반박했다. 방사청은 주 시제품 한 대만 있으면 되는 데다, 한번 반출된 장비를 다시 제출할 경우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어 반납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사업 유찰 가능성… "방사청, 시험 문제 제대로 못 낸 것"

한화에어로가 성능확인평가까지 마치긴 했지만, 이후 단계인 가격 투찰로 넘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대로템이 "공정성 담보 없이는 성능확인평가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다.

제대로 된 경쟁이 성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평가인 만큼, 유찰 절차를 밟고 두 업체가 그대로 참여하는 재공고 또는 완전히 새로운 공고를 내야 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 단독 협상 시나리오도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방사청이 사업 관리에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로템 주장대로 현장에서 최고 성능을 보인 기업이 선정되는 것이 맞지만, 입찰을 되풀이할 경우 현재까지 제대로 절차를 밟아온 한화에어로에게도 혼란과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평가 과정이 혼란을 빚으면서 업계 간 불필요한 갈등과 전력화 차질이 발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