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의 지분 4.99%를 사들인 뒤 양사의 협력을 토대로 한 '우주항공' 분야 강화를 강조했지만, 당장 눈앞의 사업에선 경쟁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판 스타링크를 목표로 시작되는 초소형 합성개구레이더(SAR) 정찰위성(150㎏ 미만) 사업에서 한화그룹 측이 협력 구도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앞으로 각종 사업에서 협력과 경쟁을 어떻게 이어나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군 당국과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지난해 말 초소형 정찰위성 체계 개발 사업에 복수 기업의 참여 여부를 두고 한화시스템(272210)과 KAI에 의사를 타진했다.
당시 KAI는 복수 기업 참여에 찬성했지만, 한화시스템은 반대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두 기업은 일찍부터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결국 방사청 등 사업 주관 기관들도 이번 초소형 정찰위성 사업자로 단일 업체를 선정하기로 최종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초소형 정찰위성 체계개발 사업은 오는 10월쯤 공고돼 올해 말부터 8기씩 5차례에 걸쳐 발사될 위성의 개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 등은 이번 사업을 통해 초소형 정찰위성이 2시간마다 한반도를 찾는 군의 정찰위성을 도와 방문 주기를 20~30분 수준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3회까지는 스페이스X를 통해 발사되고, 4회차부터는 한국형 발사체(KSLVⅡ)에 탑재해 발사할 예정이다.
그간 업계 일각에선 위성 제작부터 발사까지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생태계를 조성해 우주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보고 복수 사업자 선정을 주장해왔다.
특히 위험 요소 분산 필요성이 부각했다. 위성 40기를 단기간에 제작해 쏘아 올리고 유지해야 하는데, 한 업체가 모두 담당한다면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다. 우주 전용 부품이 아닌 자동차에도 들어가는 상용 부품을 쓰는 등 비용을 낮추는 게 핵심으로 꼽힌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초소형 위성은 기존 위성보다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아 소모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안정적인 수급이 핵심"이라며 "국내 우주 산업의 기초 체력을 키우고 생태계 확대를 위해서는 한 업체에 물량을 몰아주는 기존 방식을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화그룹이 단일 업체 선정을 강조한 건 자체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초소형 정찰위성의 경우 빠른 대응이 필요한데, 책임 있는 업체를 통해 제작부터 운용까지 일관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며 "양산 과정에서도 여러 공정을 한 공간에서 연속 수행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화시스템이 작년 12월 완공한 제주우주센터는 연간 SAR 위성 100기 양산이 가능하다.
이는 한화 측이 전날 지분 매입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KAI와의 위성 등 항공우주 분야 협력을 강조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한화는 전날 "차세대 우주 산업 생태계 고도화가 절실하다"며 "발사체와 위성 등을 협력해 저궤도부터 중·대형 위성까지 포함하는 우주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시스템 측은 이날 "KAI 지분을 샀다고 해서 경쟁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며 "협력할 사안과 경쟁할 분야는 별도"라고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날 사업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10월 KAI 지분 4.41%를 매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자회사인 한화시스템도 지난해 11월 KAI 지분 0.58%를 사들였는데, 한화그룹이 보유한 KAI 지분은 4.99%다.
업계에서는 협력과 경쟁 투 트랙을 밟는 건 우주 사업의 주도권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누리호 개발 기술을 이전받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와 한화시스템의 위성 개발 및 운영 역량을 토대로 '뉴스페이스'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초소형 정찰위성 사업 확보가 그룹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화가) 우선 사업을 확보한 뒤 협력업체 형태로 다른 기업들을 참여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협력하면서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한화의 행보를 고려하면 KAI 지분 매입이 인수를 위한 절차라는 평가도 있다. 특히 한화그룹이 계열사를 통해 4.99%만 매입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5%를 초과하면 초과 시점에 매입 사실을 즉각 공시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전략적 협력을 위한 지분 투자였으면 비공개로 할 이유도 없다"며 "한화가 약 5%를 매입하면서 다른 기업들의 KAI 인수가 더욱 부담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