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일렉트릭 울산 변압기 공장./HD현대일렉트릭 제공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 확대에 따른 전력망 수요 증가로 전력기기 업계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은 가운데, 지난달 성과급을 지급한 HD현대일렉트릭 내부가 시끌시끌합니다. 실적은 전년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성과급은 오히려 줄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HD현대일렉트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내 주요 전력기기 업체들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성과급 상한제로 실제 지급 규모가 제한되면서 업계 전반에서 보상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16일 HD현대일렉트릭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영업이익 9953억원, 영업이익률 24%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AI가 촉발한 데이터센터 투자 붐으로 초고압 변압기 수요가 급증한 데다 고환율 효과까지 더해진 결과입니다. 전년 영업이익 6690억원보다 약 50% 증가한 성적으로, 전년 영업이익률은 20%였습니다. 선임 이하 직원들은 약정임금(기본급+고정수당)의 1195%를 성과급으로 받으며 HD현대 계열사 중 가장 높은 지급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연봉제를 적용받는 8~9년 차 이상 책임급 직원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회사가 지난해 성과급 상한제를 도입, 기본급의 1000%를 최대치로 묶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연봉제 직원들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는데 성과급은 지난해 1200% 이상에서 올해 1000%로 줄었습니다.

기본급의 1000%가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성과급 상한제가 없었을 경우 기대하는 성과급과 격차가 큽니다. 노조 측에 따르면 통상 영업이익률의 60~70%를 성과급으로 산정해온 기존 연봉제 계산식을 적용할 경우 책임급의 성과급 지급률은 1707%로 산출됩니다. 노조는 상한선 1000%로 인해 반영되지 않은 초과분 707%에 대해 사측에 항의 공문을 발송한 상태입니다. 회사 안팎에서는 전력기기 업황 강세로 향후 수년간 호실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상한을 설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과급 상한제 논란은 HD현대일렉트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효성중공업 역시 초고압 변압기 등 전력기기 수요 급증에 힘입어 지난해 영업이익 7470억원으로 전년 3624억원보다 두 배 이상 급증하며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률도 전년 약 7%에서 약 13%로 올랐습니다. 그러나 변압기 등의 사업을 담당하는 전력퍼포먼스유닛(PU) 사업부 직원들의 성과급은 월 급여의 325%를 넘지 못했습니다. 효성은 부문별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고 있는데, 1~3급 직원은 최대 월 급여의 325%, 4~5급 사무직은 최대 225%로 상한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효성중공업 창원 공장에서 직원들이 초고압변압기를 검사하고 있다./효성 제공

전력기기 업계에서 유연한 보상 체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데엔 업종 특유의 사정이 맞물려 있습니다. 변압기는 수공업 공정이 대부분이라 숙련 인력 없이는 생산을 늘리기 어렵습니다. 국내 전력 기기 업계가 공통적으로 베테랑 직원 고령화에 따른 숙련공 부족을 겪고 있는 만큼, 인력 확보와 보상 체계 개선은 업계 공통의 과제입니다.

성과급 상한제를 둘러싼 갈등은 재계 전반으로도 번져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노사 합의를 통해 기존 기본급 1000% 상한선을 폐지하고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상한선 없이 실적에 연동해 보상 규모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구조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 노조 역시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 폐지를 핵심 요구안으로 내세우며 교섭을 벌였지만 최근 협상이 결렬되면서 파업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입니다.

기업들은 성과급 상한제 폐지에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초과 이익을 성과급으로 대거 소진할 경우, 다가올 불황을 대비할 사내 유보금이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 재원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 방식에 대해서도 신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현재는 업황 호조와 주가 상승으로 잡음이 없지만, 향후 실적 둔화 국면에서 상한 없는 성과급 지급은 주주 배당 여력 축소 등 주주 이익 침해 논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호황기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당분간 재계가 풀어야 할 공통 숙제로 남을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