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 이후 중동 인근 해역의 선박 관리로 바빠진 선주사가 선박 명명식에 불참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선박 명명식은 조선소에서 건조가 완료된 배에 이름을 붙이고 첫 공식 출항을 축하하기 위해 치르는 행사다.
1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그리스 선주사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해 소유 선박의 위급 상황을 관리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배를 만든 국내 A 조선사에 선박 명명식 불참을 통보했다.
이 선박의 명명식은 이달 중 열기로 올 초 확정했었다. 선사 사장 등 고위층 인사 1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과거에도 A 조선사와 이 선사는 신조 선박의 명명식을 여러 차례 가졌다고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사 중에서도 특히 유조선 발주가 많은 곳이 미국·이란 전쟁으로 인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면서 "관리자급 인사들이 중동 지역 선박과 관련한 업무량이 늘어 결국 명명식 참석을 취소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소속 선원 안전 문제부터 항로 관리, 보험 등 선사의 업무가 급증한 상황이다.
항공편 결항으로 일정을 변경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이달 중 B 조선사를 찾아 신조 선박 명명식에 참여할 예정인 또 다른 선사는 이용하려고 했던 항공편 예약이 취소돼 행사 일정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 여파로 일부 국가의 영공이 폐쇄되면서 항로 변경과 항공편 취소가 잇따르고 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선박 명명식은 선주사의 요청이 있는 특정 선박에 한해 진행되며 대형 선박의 경우 대통령, 조선사 대표가 참석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국가 안보 다목적 선박 명명식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참석했다. 2021년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열린 모잠비크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명명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바 있다.
수천 억원에 달하는 선박의 명명식인 만큼 선주사 사주와 임직원들은 다양한 행사에 참여한다. 신조 선박의 탄생을 알리는 의미로 밧줄을 도끼로 끊고 선박에 올라가 시설을 둘러보고,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기도 한다. 선박의 안전성과 안전 운항을 기원하는 의미로 샴페인을 선박 외벽에 던져 깨는 '샴페인 브레이킹'도 대부분의 명명식에서 진행된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명명식을 비대면 화상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적도 있었다"면서 "아직까지 이번 전쟁으로 선박 인수를 연기하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은 지난해 중동 지역 선사에 총 11척의 선박을 인도했다. 올해 인도 예정인 중동 발주 선박을 국가별로 보면 아랍에미리트(6척), 오만(4척), 이스라엘(2척), 카타르(4척) 등 16척이다. 내년에는 카타르 LNG 프로젝트 등으로 발주가 급증해 인도 예정 물량이 26척에 이를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