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정부가 승인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 계획인 '대산 1호 프로젝트'는 기업들이 공생을 위해 자구안을 내놓고 정부가 이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상 기업인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HD현대오일뱅크 등은 고부가가치 사업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시점에 정부 지원이 더해지면서 사업 재편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25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대산 1호 프로젝트 사업재편 승인' 안건을 확정했다.
공급 과잉 상태인 석유화학 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은 대산 사업장을 통합하고, 고부가·친환경 중심 산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사업 재편 기간에 롯데케미칼의 노후한 나프타분해설비(NCC)의 가동을 중단하고, 두 회사의 범용 다운스트림 설비도 축소해 운영하기로 했다.
특히 석화업계는 정부의 금융 지원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석화 기업들은 적자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석화 기업들이 저렴한 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판매하다 보니, 국내 기업은 물건을 팔아도 이익이 나지 않는 '역마진' 상황이 이어져 왔다.
실적이 악화되자 신용평가사들은 석화 기업의 신용 등급을 잇따라 강등했다. 신용 등급이 떨어지면 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더 높은 이자를 줘야 하거나, 아예 채권 발행이 안 되는 등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석화 기업들은 알짜 자산을 팔거나 단기 자금을 융통하는 방식으로 연명해왔다.
대산 1호에 제시된 최대 2조원 규모의 금융 패키지가 실행되면 기업들은 자금 운용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기존 대출을 영구채로 전환하기로 했는데, 약 1조원 규모의 부채가 자본으로 바뀌어 재무 건전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업계는 범용 제품 생산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전환하려는 시점에 정부가 최대 1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사업 재편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설비 개선, 신사업 개발을 위해 각각 6000억원씩, 총 1조2000억원을 증자하기로 했다.
대산 1호는 신사업으로 고탄성 플라스틱, 이차전지 핵심 소재 등의 생산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업 재편 효과로 2028년에는 통합 법인이 흑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울산, 여수 단지도 각 사업장이 우위를 가진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울산, 여수 단지에 대한 정부 지원책도 순차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가장 먼저 사업 재편안을 낸 대산 단지에 정부 지원책이 총집약된 만큼 울산과 여수 단지에 대한 지원 방안은 대산 1호를 기준으로 각 단지에 필요한 방안을 선별해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울산은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연내 가동을 앞두고 있어 변수로 꼽힌다. 샤힌 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이 9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울산 일대에서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다른 기업들이 손실을 감수하며 설비를 줄이는 와중에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된다면, 에틸렌 공급 과잉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장 먼저 사업 재편안을 낸 대산 1호에 정부 지원책이 전부 나오다 보니, 다음 지역에서는 비슷한 수준으로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며 "업계의 요구를 정부가 대부분 받아들인 만큼 앞으로 기업들이 자구안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대산 1호 프로젝트 승인에 대해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민간의 자구 노력은 물론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번 승인이 향후 구조 개편 확산의 중요한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