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의 대다수 기업은 창업자의 강력한 리더십과 결단력에 의존해 움직였다. 이병철 회장이 이끈 삼성과 정주영 회장이 이끈 현대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지금 이들 기업은 총수 혼자 경영을 책임지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총수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각 분야를 관리하고 미래를 위한 최종 의사 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이른바 '키맨(keyman)'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주요 기업들의 키맨을 소개하고 이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난 1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민관 합동 회의'가 열렸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모였다. 특히 대중에게 낯선 인물 한 사람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한화그룹을 대표해 나온 여승주 부회장(한화 경영지원실장)이었다.
최근 수년간 재계의 주요 행사에 한화그룹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주로 참석했다. 이날은 사업과 관련된 일정으로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여 부회장이 사실상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 그룹 내에서 가장 강력한 실권을 쥔 인물임을 보여준 사례에 해당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 부회장은 40년 넘게 한화그룹에서만 한 우물을 파온 '정통 한화맨'이다. 한화그룹이 창업주인 고(故) 김종희 회장 별세 후 김승연 회장 체제에서 방위산업, 에너지, 조선, 금융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그는 재무와 기획 분야에서 '살림꾼'으로 활약해 왔고, 한화생명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며 경영 능력까지 입증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여 부회장의 이력이 고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의 2인자로 꼽혔던 이학수 전 부회장과 흡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전 부회장 역시 이건희 회장의 두터운 신임 속에 오랜 기간 삼성의 안살림을 책임졌고, 삼성화재에서 CEO를 역임했다. 또 구조조정본부장과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하며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회장으로 넘어가는 경영권 승계 작업을 기획하고 실행한 핵심 인물이다. 여 부회장 역시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의 승계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홀로서기' 집중하는 한화家 삼형제… 여 부회장은 안살림 총괄
한화그룹은 지난해 6월 20일 단행한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당시 한화생명 대표를 맡고 있던 여 부회장을 ㈜한화 경영지원실장으로 임명했다. ㈜한화 경영지원실은 그룹 전체의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각 계열사들의 현안을 관리하는 실질적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는 조직이다.
현재 한화그룹의 부회장단은 총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여승주 부회장, 김동관 부회장 외에 전임 ㈜한화 경영지원실장인 김창범 부회장(고문)과 한화생명 대표인 권혁웅 부회장이다. 김동관 부회장이 총수 일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문경영인 부회장 가운데 그룹 총괄 경영에 나서고 있는 인물은 여 부회장이 유일하다.
최근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은 각자의 사업에서 성과를 만드는 데 매진하고 있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솔루션 대표로서 방위산업과 에너지, 조선 사업 등을 이끌고 있다.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은 금융 부문을 담당하고 있고, 삼남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과 기계·로봇 사업 등을 주도하고 있다.
김 부회장과 김 사장, 김 부사장의 경영 활동은 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주와 신사업 진출, 인수합병(M&A) 등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는 데 집중돼 있다. 각자 '홀로서기'에 앞서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와 재계, 금융투자 시장 등에서 경영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인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여 부회장은 이들이 전방에서 성과를 내는 사이 그룹 전체적인 안살림을 총괄하고 각 계열사들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41년 근무한 한화 대표 재무通… 금춘수 계승한 '김승연의 腹心'
여 부회장은 서강대 수학과를 졸업한 1985년 당시 한화의 계열사였던 경인에너지에 입사하며 직장 생활의 첫발을 뗐다. 수학 전공자답게 숫자와 관련한 분야에서 탁월한 감각을 인정 받은 그는 오랜 기간 재무 부서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여 부회장이 재무 전문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한화그룹이 경영난을 겪었던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시절부터다. 당시 한화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비서실을 폐지하고 구조조정위원회를 신설했다. 구조조정위원회는 이후 구조조정본부로 확대 개편됐다. 그는 이 조직의 주축으로서 고강도로 진행된 군살 빼기와 사업 비중 조정, 계열사 개편 등의 실무를 주도했다.
1997년 400%대에 달했던 한화그룹의 부채 비율은 2001년 200% 밑으로 떨어졌다. 외환위기 당시 12조원 수준이었던 총 차입금 규모도 7조원대로 대폭 감소했다. 한화그룹은 정유 사업을 하던 한화에너지와 한화베어링 등 여러 계열사를 매각하고 사업을 방산과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재편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의 실무를 맡았던 여 부회장은 이후 M&A에서 걸출한 실력을 입증하며 그룹의 핵심 브레인으로 떠올랐다.
한화그룹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도 한화증권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금융 시장에서는 초라한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금융을 그룹의 차세대 먹거리로 꼽은 김승연 회장은 1999년 신동아그룹 해체 후 매물로 나왔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과 신동아화재(현 한화손해보험) 인수에 전력을 쏟았다. 당시 구조조정본부 재경팀장으로 2002년 대한생명, 신동아화재 인수 실무 작업을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여 부회장이다.
한화그룹의 총괄 컨트롤타워였던 구조조정본부는 지난 2006년 경영기획실로 재편됐다. 경영기획실 전략팀장으로 일했던 여 부회장의 능력은 2014년 한화그룹이 삼성으로부터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등 방산과 화학 사업 부문을 인수할 때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당시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이들 회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한화임팩트, 한화토탈에너지스 등 핵심 계열사로 자리잡고 있다.
여 부회장은 한화그룹 내에서 '리틀 금춘수'로 불리기도 한다. 금춘수 전 부회장은 오랜 기간 김승연 회장과 동고동락하며 수석 부회장으로서 막강한 실권을 가진 그룹 내 2인자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1953년생인 금 전 부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한화의 전신인 골든벨상사에 입사했다. 그는 구조조정본부 지원팀장을 거쳐 경영기획실장(사장)을 지냈고, 2016년부터 8년간 부회장으로 일한 뒤 2024년 고문으로 물러났다.
김승연 회장은 1952년생으로 고 김종희 창업주가 갑작스럽게 별세한 1981년 한화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1살의 나이 차에 비슷한 시기에 한화에서 일을 시작한 후 46년간 고락을 함께했다는 점에서 금 전 부회장은 김 회장이 가장 신뢰하는 '복심(腹心)'으로 꼽힌다.
한화 관계자는 "여 부회장은 구조조정본부와 경영기획실, 한화생명 등에서 일하며 마치 그림자처럼 금 전 부회장이 거쳤던 길을 뒤따라 걸어 왔다"며 "금 전 부회장이 떠난 지금은 여 부회장이 김승연 회장의 새로운 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유목민처럼 뜁시다"… 한화생명 성장 이끈 '노마드 회의'
"유목민처럼 뛰어 봅시다."
지난 2019년 3월 25일 서울 여의도 한화생명 본사 대표이사실. 이곳에 본사 영업과 상품 개발, 리스크 관리, 보험 심사 등을 담당하는 팀장 6명이 모였다. 이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여 부회장은 한화생명의 대표로 선임됐다. 갑작스럽게 호출돼 숨죽이며 새 대표의 지시를 기다리던 팀장들에게 여 부회장은 이렇게 첫 번째 제안을 했다.
여 부회장은 앞서 2016년부터 1년여간 한화투자증권의 대표로 일했다. 그가 한화투자증권을 거쳐 그룹의 주축 계열사인 한화생명의 CEO로 선임된 것을 두고 그룹 내부에서는 "김 회장이 '재무통' 여승주가 '경영인' 여승주가 돼서도 출중한 능력을 발휘할지 계속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브레이크 더 프레임(Break the frame·틀을 깨라)'을 강조하며 취임한 여 부회장은 유목민이 되자는 제안대로 취임 첫날부터 바로 '노마드(NOMAD·유목민) 회의'를 시작했다. 이 회의는 매주 격주로 CEO와 핵심 부서의 팀장들이 모여 변화와 혁신 방안을 찾는 '끝장토론'을 하는 자리였다.
피나는 구조조정과 초대형 M&A 등을 주도하며 잔뼈가 굵은 여 부회장은 비교적 안전한 방식으로 운영돼 왔던 보험사 역시 한계를 깨고 다양한 변화와 도전이 필요하다고 봤다. 한화생명은 노마드 회의를 통해 다양한 성과를 거두며 빠르게 성장했다.
대표적인 변화는 전속설계사 중심의 보험 영업을 벗어나 법인보험대리점(GA) 중심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한화생명은 지난 2021년 업계 최초로 전문 GA사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출범하며 '제판(제조·판매) 분리'를 단행했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출범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고 이후 GA사인 피플라이프 등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한화생명은 제판 분리를 통해 상품 판매 라인업 확대, 고객서비스 강화를 통한 점유율 확대 등 여러 성과를 거뒀다. 또 2024년에는 생보사 시장 점유율 16.2%를 기록하며 교보생명(12.6%)을 제치고 삼성생명(21.8%)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제판 분리는 이후 신한라이프와 동양생명, KB라이프, 흥국생명 등으로 이어지며 보험업계의 일반적인 운영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한화생명의 노마드 회의는 여 부회장이 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이어지며 지금도 격주로 진행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 부회장은 40년 넘게 한화에서 일하며 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한화생명에서 경영 능력도 입증했다"며 "샐러리맨 신화를 넘어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에게 든든한 멘토가 되기에 충분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 한화 승계 작업 책임진 키맨… 금융 계열사 분리가 핵심
다만 일각에서는 여 부회장의 역할이 다소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룹 전체를 총괄 지휘하기에는 그의 이력 대부분이 재무·기획과 구조조정, M&A 등에 집중돼 있어서다. 여 부회장은 그룹의 주력 사업인 방위산업이나 에너지, 조선 등의 계열사를 이끌어 본 경험이 없다.
여 부회장의 이력은 그와 자리를 바꿔 한화생명 대표를 맡고 있는 권혁웅 부회장과 대비된다. 권 부회장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화학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1985년 한화에너지에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올랐고 한화토탈에너지스 대표, ㈜한화 지원부문 총괄을 거쳐 한화오션의 대표도 역임했다. 여 부회장이 재무통이라면 권 부회장은 기술통인 셈이다.
한화그룹 한 관계자는 "여 부회장이 숫자에 달통한 재무 전문가라면 권 부회장은 에너지, 조선 등 주력 계열사에서 다양한 업무와 글로벌 시장까지 경험한 현장 전문가"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그룹 경영지원실장인 여 부회장이 2인자로 꼽히지만, 향후 권 부회장이 ㈜한화에 복귀할 경우 그가 그룹 총괄 경영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여 부회장이 그룹의 안살림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의 승계 작업을 지휘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화 삼형제의 독립 경영은 이미 닻을 올린 상태다. ㈜한화는 지난달 14일 이사회를 열고 기계·로봇, 유통·레저 등의 사업을 하는 신설 지주회사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를 설립하는 인적 분할안을 의결했다.
새 지주회사 산하에는 김동선 부사장이 주도해 사업을 진행했던 한화비전, 한화세미텍, 한화모멘텀, 한화로보틱스와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아워홈 등이 속한다. 사실상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 가운데 김 부사장이 가장 먼저 '홀로서기'에 나선 셈이다.
남은 과제는 김동관 부회장과 김동원 사장이 어떻게 각자의 몫을 나눌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김동원 사장이 한화생명을 비롯한 금융 부문을 떼어내 '한화금융지주'를 만들어 가져가는 두 번째 분할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지만, 기계·로봇·유통 부문에 비해 금융 부문은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훨씬 커 분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또 산업 부문과 금융 부문은 분할하는 데 적용되는 법이 다르다는 점도 치밀한 사전 준비와 작업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