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 그리스와 '3자 조선 협정'을 체결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미국 군함을 한국 조선사의 기술로 그리스에서 건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19일(현지 시각) 유럽연합(EU) 정책 전문지 유랙티브에 따르면 킴벌리 길포일 그리스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17일 한 포럼에서 "한국, 미국, 그리스가 조만간 3자 조선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며 "미국이 존중하고 보호할 동맹국과 협정을 맺는 것은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세 나라의 협력이 군함 건조 분야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주미 그리스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미 해군의 신형 프리깃함(호위함)을 그리스에서 건조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위대한 조선소를 재건하고 그리스에서 프리깃함을 건조하는 방안을 계속 논의해 양국 모두에게 일자리와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13일 자국 조선업을 재건하기 위한 '미국 해양 행동계획(MAP)'을 발표한 바 있다. 동맹국 조선소에서 계약 초기 물량을 건조하고, 이후 대미(對美) 투자를 통해 미국에서 선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리스에서 미 해군의 군함을 건조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이 계획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그리스의 조선업 역량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어 향후 양국 협력에 한국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리스는 소형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지만,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군함 건조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권효재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연구원은 "미국은 존스법에 의해 자국 내에서 해외 기술과 자본으로 함정을 건조하는데 제약을 받고 있다"며 "그리스에서 한국 자본과 기술로 배를 만드는 방식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3자 조선 협정이 그리스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시각도 있다. 그리스 피레우스항에는 세계 최대 선주국인 그리스의 선사 사무실이 있어, 항구 운영권이 있는 중국이 선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국 조선사에 발주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조선 협정을 통해 그리스와 밀착함으로써 그리스 선사의 중국 조선소 발주를 견제하려 한다는 시각이다.
그리스의 피레우스항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이 수에즈 운하를 지나 지중해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대규모로 하역하는 항구인데, 중국 국영 해운사인 COSCO가 67%의 지분을 보유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MAP과 3자 조선 협정에 따라 향후 미국 조선소에서 한국 기술로 건조된 그리스 선박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그리스 내에서 중국 조선·해운사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게 조선업계의 분석이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 입장에서는 조선업 재건 외에도 전략 상선대(평상시 원유, 천연가스 등 핵심 전략 물자를 운송하고, 전시·비상시에는 군사 물자 운송에 투입되는 국가 지정 선박)를 갖추는 것이 큰 과제"라며 "한국, 그리스와의 조선 협력은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게 가능한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