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내 건설기계 업계의 최대 실적을 견인했던 북미 시장의 회복이 지연되면서 국내 건설기계 양대 산맥인 HD건설기계와 두산밥캣이 올해 전략 축을 유럽과 신흥 시장으로 옮기고 있다. 관세 등 불확실성이 잇따르는 북미 시장에만 의존하는 대신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는 신흥국과 상대적 회복세가 기대되는 유럽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구상이다.
◇ "업황 바닥… 북미 시장은 회복 한계"
20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북미 특수를 누렸던 건설기계 업체들은 2023년 역대 최대 실적을 찍은 뒤 성장통을 겪고 있다. 지난 1월 HD건설기계로 통합 출범한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 가운데, 순수 건설장비를 담당하는 HD현대건설기계의 작년 영업이익은 1709억원으로 10.3% 감소했다.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의 인프라 수요로 매출은 전년 대비 9.8% 증가했지만, 북미 관세 부담 등이 수익성의 발목을 잡았다.
HD현대건설기계는 보편 관세 15%에 철강·알루미늄 등 원자재 파생 관세(약 6%)가 더해지며 총 21%에 달하는 관세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작년 영업이익률은 4.5%로 전년 대비 1%포인트 낮아졌다.
북미 매출 의존도가 73%에 달하는 두산밥캣은 타격이 더 컸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1.3% 급감한 6861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였던 2023년 영업이익 1조3900억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이익 규모가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률도 2023년 16.8%에서 지난해 7.8%로 반토막 났다. 북미 시장 수요가 꺾이자 딜러들이 신규 주문을 넣기보다 기존 재고 소진에 집중했고, 이에 따라 두산밥캣은 판매 방어를 위한 판촉비 지출이 늘어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문제는 올해도 북미 시장의 의미 있는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HD건설기계와 두산밥캣은 공통적으로 미국 주택시장 지표가 여전히 기준선을 하회하고 있어 회복 속도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관세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딜러들의 재고 확충 심리가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신시장 확대 나선 건설기계 업계
이에 두 회사는 주력 상품을 내세워 유럽과 신흥국 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두산밥캣의 지역별 매출(달러 기준)을 보면 북미(-3.0%)와 아시아·라틴·오세아니아(-13.2%) 시장은 역성장한 반면, 유럽은 유일하게 1% 성장했다.
두산밥캣은 소형 건설 장비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주택·렌털 시장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에 주택 시장 회복세가 감지되는 유럽에서 판매 활동을 강화하고, 기존 건설기계 외에 농업·조경 장비(GME)와 산업 차량(MH) 등 비건설 장비 판매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두산밥캣 관계자는 "유럽 시장이 완전한 호황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장 반등세와 금리 인하 기조가 맞물려 미국보다는 상대적인 회복 폭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HD건설기계는 '자원 부국'을 중심으로 신흥 시장 판로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기준 건설기계 전체 매출의 약 40%가 신흥 권역(아프리카·중동 18.5%, 중남미 11%, 인도 8.7% 등)에서 나온 만큼, 이들 지역의 견조한 수요를 발판 삼아 실적을 방어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채굴(마이닝)과 대형 인프라 투자가 활발한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규모 자원 개발이 진행 중인 브라질과 몽골 등이 핵심 타깃이다. 연 5%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는 인도 시장에는 20톤급 주력 모델과 입찰 전략형 모델을 투입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 판매망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유럽 시장에 대한 대응도 강화한다. HD건설기계는 유럽연합(EU)의 정책 자금 집행 재개에 맞춰 차세대 신모델을 투입하고, 딜러망을 재정비해 완만한 시장 회복세에 올라탄다는 전략이다.
HD건설기계 관계자는 "과거 HD현대건설기계, HD현대인프라코어 등 개별 기업 형태로는 공략하기 어려웠던 신흥국 초대형 광산 시장에서 통합 법인의 영업 시너지가 나오고 있다"며 "장비 공급뿐 아니라 제품 판매 가격의 최대 4배에 이르는 부품 교체, 수리 서비스 등 애프터마켓 사업으로도 실적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지속된 공급자 우위 시장이 막을 내리면서 업체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국면이지만 신흥국 인프라 수요가 견조해 업황이 바닥을 다지고 반등할 것이란 기대감도 공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건설기계 업계의 실적에는 북미 시장의 부진을 회복세에 접어든 유럽과 성장하는 신흥국 수요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상쇄하느냐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