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오션(028670)이 SK해운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대거 인수하기로 하면서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VLCC 운임이 치솟는 상황이라 몸집을 키우기에 긍정적인 환경이지만, 매수한 SK해운 선대의 선령이 높다는 점과 국제 정세 변화 가능성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팬오션은 지난 11일 SK해운과 VLCC 10척을 6억6800만달러(약 9737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팬오션 자산총액(10조2715억원)의 9.48%규모다.
팬오션은 "국내 주요 화주와의 장기화물운송계약을 수행 중인 선박을 취득해 운송 역량을 강화하고 수익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를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선박들은 계약에 따라 내년 4월 인도될 예정이다.
해당 선박 인도가 완료되면 팬오션은 모두 12척의 VLCC를 운용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VLCC 선대를 확충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팬오션의 지난해 말 기준 선대 규모는 246척으로 이 가운데 VLCC는 2척에 불과했다.
팬오션의 운영 선대는 지난해 말 기준 건화물선 202척, 비(非)건화물선 44척으로 구성 돼있다. 건화물(dry bulk)은 곡물이나 광물같은 화물을 말한다. 비건화물(wet bulk)은 석유나 석유 정제 제품 등을 말한다.
팬오션은 시황 전망이 밝은 VLCC 사업 확장을 통해 기존 사업의 위험성을 상쇄할 수 있을 전망이다. 팬오션의 주력 사업인 건화물선 사업이 공급 우위로 보합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한 데다, 기존 팬오션의 비 건화물 부문의 주력이던 MR탱커(5만DWT 내외의 석유제품운반선)의 시황 회복세가 더딜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라서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팬오션의 주력인 케이프맥스급 건화물선(10만DWT 이상의 건화물선)의 수익은 전년 대비 20%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인도 예정인 건화물선 선복량이 3980만DWT(중량재화톤) 규모이나, 해체량은 1120만DWT에 불과해 공급 우위 상황이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반면 VLCC의 일일 용선료는 올해 평균 5만7600달러로 전년 대비 12.7% 오를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7% 하락했으나, 올해 원유 해상 물동량 증가가 전망되면서 대폭 반등한다는 것이다. MR 탱커의 일일 용선료도 올해 전년 대비 12.6% 오른 2만4100달러로 전망되나, 2024년 2만9900달러에는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팬오션은 이러한 시황을 고려해 곧장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를 단행한 것이지만, 업계에서는 팬오션이 다소 위험한 투자를 단행한 것일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우선 팬오션이 보유한 VLCC 선령(선박의 나이)이 높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SK해운은 VLCC 19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선령은 12.2년이다. 선령 4~6년 선박(6척)을 제외하면 평균 선령은 15.5년인데, 업계에서는 팬오션이 이 노후 선박들을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고 VLCC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름세를 보이면서 선령 5년 안팎 선박은 최근 1억2400만달러(약 1790억원) 수준의 가격대를 기록하고 있다. 10년 안팎 VLCC 가격 역시 이달 초 척당 9700만달러(약 1400억원) 수준을 보였다.
팬오션이 선박 10척을 인수하기로 한 가격이 6억6800만달러인 만큼 선령 15년 안팎 선박을 인수한다고 보는 것인데, 이런 배들은 추진 중인 IMO(국제해사기구)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경제적 규제(중기조치)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중기조치는 국가 간 운항을 하는 총톤수 5000GT 이상 선박에 온실가스 연료 집약도를 기준점 대비 점진적으로(2035년까지 최대 43%)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본목표치(30% 감축)를 달성했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 1t당 100달러를 IMO 넷제로 기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기본 목표를 채우지 못한 경우 부과금은 1t당 480달러다.
노후 선박의 경우 선박 구조상 무탄소 연료를 사용할 수 없고, 온실가스 배출 저감 장치도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팬오션이 이번 투자로 노후 선박을 대거 들이면 규제에 따른 비용 부담이 크게 늘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수에 지속 노출되는 선박은 통상 선령이 15년 이상이 될 경우 구조적 결함 발생 가능성이 커져 유지·보수 비용이 증가하는데, 이러한 부담도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앞서 HMM은 이런 점을 고려해 SK해운 인수 협상 당시 몸값을 2조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국제 정세 역시 한 리스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유조선 시황은 전 세계 석유 수출량 증대에 따른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원유가 제재를 받으면서 늘어난 톤마일(Ton-mile·해상 운송 수수료 지표로 쓰이는 화물 중량과 이동 거리를 곱한 값) 증대 효과 때문인데, 전쟁이 종식되면 시황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유조선 사업의 경우 단기 시황은 밝은 상황이라 당장은 수익을 낼 수 있겠지만, 향후 여러 리스크가 분명한 상황"이라며 "팬오션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선대를 늘렸는데, 해당 선박들이 다음 운송 계약을 따낼 수 있는지가 투자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팬오션 관계자는 "HMM이 평가한 기업 가치와 인수한 자산의 가치는 산정 기준이 서로 다르기에 둘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고, 인수 선박들의 장기운송계약이 폐선 예상 시기와 일치하도록 되어있어 투자 회수에 무리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