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家)에서 경영권 지분이 포함된 상속재산을 두고 벌어진 첫 법적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구광모 LG 회장이 개인사를 뒤로 하고, 그룹 경영에 집중할 환경이 마련됐다. 구 회장이 주도해 온 사업 재편, ABC(AI·바이오·클린테크) 신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합의11부(재판장 구광현 부장판사)는 12일 고(故) 구본무 선대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가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 분쟁 1심 판결에서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원고 측 청구가 제척 기간은 넘지 않았으나, 원고가 참석한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가 유효하게 작성됐고 그 과정에서 기망 행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 LG그룹 제공

구 회장이 상속 소송에 휘말린 건 2023년 2월 28일이다. 구 선대 회장이 남긴 2조원대 상속재산을 다시 나누자며 세 모녀가 구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5월 별세한 구 선대 회장이 남긴 재산은 (주)LG 주식 11.28%를 포함해 2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구 선대 회장 별세 당시 구 선대 회장의 (주)LG 보유 지분은 법정 상속 비율이 아니라 상속인 간 합의를 통해 분배됐다.

구 선대 회장이 보유했던 (주)LG지분 11.28% 중 8.76%는 구광모 회장에게 돌아갔다. 구연경 대표는 2.01%, 구연수 씨는 0.51%를 가져갔고 김 여사는 지분을 상속받지 않았다.

다만 김 여사 지분은 4.2%로 구광모 회장(15.95%), 구본식 LT그룹 회장(4.48%)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세 모녀는 (주)LG 주식 외에 구 전 회장의 개인 재산인 금융투자상품·부동산·미술품 등을 포함해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추가로 받았다.

그러나 세 모녀는 소송을 제기하며 상속 협의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과 동의 없이 분할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세 모녀는 "유언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경영권 지분을 양보했지만 실제로는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착오 또는 기망에 의한 것으로 2018년 합의의 효력이 없다는 것이 세 모녀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2023년 말 뉴욕타임스(NYT)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상적인 상속 절차를 건너뛴 채 구 회장이 훨씬 더 많은 유산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 1947년 창업 이후 처음 벌어진 상속 분쟁, 구광모 회장 '승소'

LG그룹은 1947년 창업 이후 4대에 걸쳐 승계가 이루어지는 동안, 단 한 번도 상속이나 경영권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인 적이 없었다. 유교적 가풍에 따라 장자 승계 원칙을 철저히 지켰고, 형제들과 동업자였던 허씨 가문 등은 경영권 분쟁을 피하고자 LS, GS, LX 등으로 계열 분리를 해서 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상속 소송이 제기됐을 당시 LG그룹은 "그룹의 전통과 경영권을 흔드는 건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반응했다.

법원은 1심 선고에서 세 모녀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LG가(家)를 뒤흔든 상속 분쟁에서 구 회장의 손을 일단 들어줬다. 우선 법원은 상속재산분할 협의서가 유효하게 작성됐다고 판결했다. LG그룹 재무관리팀이 원고의 위임을 받아 보관하고 있던 인감도장으로 상속재산분할 협의서에 인장을 날인한 사실에 대해선 다툼이 없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구연경(왼쪽) LG복지재단 대표와 김영식 여사, 뒤쪽은 구연수 씨/ 뉴욕타임즈(NYT) 인터뷰 기사 캡처

법원은 재무관리팀 직원의 증언 등을 토대로 "원고는 재무관리팀 직원으로부터 상속재산의 내역 및 분할에 관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았고, 피고와 상속재산분할 협의를 진행했다"며 "재무관리팀은 원고의 위임을 받아 상속재산분할 협의서에 날인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또한 법원은 세 모녀의 주장과 달리 상속재산분할 협의서 작성 과정에서 기망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세 모녀는 구 선대 회장이 남긴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장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그렇지 않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원고는 재무관리팀이 '(주)LG 주식 등 경영 재산은 피고에게 모두 상속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이나 유지 메모가 있었다고 기망해 상속재산분할협의서에 날인했다고 주장하나, 재무관리팀 직원의 증언을 보면 구 선대 회장은 위와 같은 유지를 남겼고, 재무관리팀 직원이 유지를 청취해 기재한 유지 메모가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법원은 "설령 위와 같은 기망 행위가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유지 메모의 존재나 개별 상속재산이 경영 재산에 해당하는지와 무관하게 원고가 (주)LG 주식을 분배받는 등 개별 상속재산에 관한 구체적인 의사표시에 따른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이루어졌으므로 기망 행위와 상속재산 분할 협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구 회장을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은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 법원에서 확인됐다"고 말했다.

◇ 구광모 회장, 사실상 '경영권 분쟁'서 벗어나…ABC 가속할 듯

이번 판결로 구광모 회장 체제의 지배구조 불확실성은 일단 해소됐다. 이번 소송은 구 회장을 피고로 하는 가족 간 재산 다툼이었으나, ㈜LG 지분이 분할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경영권 분쟁'이었다. 이에 구 회장이 2018년 6월 취임 이후 보여준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 기조는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2월 구광모(앞줄 가운데) LG그룹 회장이 인도 뉴델리에 있는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에서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LG그룹 제공

구 회장은 취임 이후 LG그룹의 부진 사업을 매각 또는 축소하고 전장사업을 비롯해 AI·바이오·클린테크 등에 집중했다. LG그룹은 219년 LG전자의 연료전지 사업과 LG디스플레이의 조명용 OLED 사업을 정리했다. 2020년에는 LG화학의 편광판 사업을, 2021년에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2022년에도 LG전자의 태양광 패널 사업을 추가로 정리했다.

대신 배터리를 포함한 전장 사업은 커지고 있다. 그 결과 2013년 출범 이래 적자를 면치 못했던 전장 담당 LG전자 VS(Vehicle Solution) 사업본부는 2025년 매출 11조1357억원, 영업이익 5590억원을 달성했다. 배터리 사업을 전담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연간 영업이익 1조3461억원을 기록했다.

구 회장은 체질 개선을 위해 미래 첨단기술인 ABC(AI·바이오·클린테크)를 신사업으로 낙점했다. 2028년까지 국내 투자액 100조원 중 50조원 이상을 세 분야에 쏟아붓는다는 방침이다.

AI 부문에서 LG그룹은 싱크탱크인 'LG AI연구원'을 2020년에 설립하고, 자체 초거대 AI 모델인 '엑사원(EXAONE)' 시리즈를 고도화하는 등 그룹 차원의 AI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AI연구원 인력은 2020년 12월 출범 당시 48명에서 2025년 말 기준 205명으로 4배 이상이 됐다.

바이오 부문에선 LG화학 생명과학본부를 중심으로 세포 치료제와 항암 영역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2023년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미국 제약사에 희귀비만증 신약 기술을 수출했다.

클린테크 부문은 바이오 소재, 폐플라스틱 재활용, 신재생 에너지 전환 등 탈탄소 전환에 맞춘 친환경 고부가 신사업을 의미한다. LG그룹은 전기차 배터리뿐만 아니라 배터리 재활용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친환경 밸류체인을 강화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구 회장의 개인사이지만 경영권과 관련이 있는 소송이 생길 경우 그룹내부는 물론 투자자 입장에서도 불확실성으로 인식한다"라면서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더라도 1심 판결이 나온 만큼 본업에 보다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