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올해 설비투자(CAPEX)를 줄이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전기차 시장이 침체돼 배터리 수요가 줄어들자 투자를 늘리기보다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는데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3사는 최근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터리 업체들은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간 설비투자를 꾸준히 늘렸지만, 지난해부터 감축하는 기조로 돌아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40% 이상 축소하기로 했다. 대신 기존 전기차 배터리 생산 설비를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전환하는 등 자산 활용도를 높이고, 현금 흐름 관리와 재무 구조 안정에 집중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21년 설비투자에 3조8950억원을 쓴 이후 2024년까지 투자 규모를 확대했다. 2022년 6조2910억원, 2023년에는 10조8910억원, 2024년에는 12조5470억원을 설비투자에 지출했다. 그러나 지난해 설비투자는 10조4170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17% 줄였고, 올해는 더 큰 폭으로 감축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설비투자에 3조3000억원을 썼던 삼성SDI 역시 올해는 투자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삼성SDI는 최근 진행한 지난해 실적 관련 컨퍼런스콜을 통해 "올해 설비투자는 헝가리 공장 내 라인 구축, 미국 공장의 리튬인산철(LFP) ESS 라인 개조 등에만 집중하고, 전체적인 규모는 전년보다 소폭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SDI도 2024년까지 설비투자를 확대했지만, 지난해부터 기조를 바꿨다. 삼성SDI는 2022년에 설비투자로 2조6000억원을 쓴 뒤 2023년에 4조3000억원, 2024년에 6조6000억원으로 3년 간 투자 규모를 늘렸다. 그러나 지난해 설비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50% 수준으로 대폭 축소했고, 올해도 추가로 감액하기로 했다.
SK온도 비슷한 상황이다. SK온은 2022년 5조원, 2023년 7조원, 2024년 7조5000억원을 설비투자에 썼지만,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3조5000억원을 투입하는데 그쳤다. 올해 예정된 설비투자 규모는 1조3000억원이다.
배터리 3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설비투자를 줄이기로 한 것은 미국이 전기차 신규 구매자에게 주는 최대 7500달러(약 11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지난해 9월 말 종료한 뒤 전기차 시장이 눈에 띄게 침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전기차 시장조사업체인 로모션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2070만대를 기록했다. 중국과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은 각각 1290만대, 430만대로 전년 대비 17%, 33%씩 증가했다. 반면 북미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180만대로 전년보다 4% 감소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3사가 3~4년 전 설비투자를 늘렸던 것은 미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전기차 시장이 뒷걸음질을 하게 되면서 신규 투자보다는 이미 확보한 미국 현지 생산 시설을 활용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