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일렉스 코리아 2026'에 마련된 LS일렉트릭 부스에 HVDC 변환용 변압기 모형이 전면에 전시돼 있는 모습./최지희 기자

국내 전력기기 업계를 대표하는 LS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이 '일렉스 코리아 2026'에서 나란히 "전압형 HVDC(초고압직류송전) 기술 내재화를 내년까지 완수하겠다"고 선언하며 치열한 기싸움을 벌였다. 11조원 규모의 대규모 국책 사업인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권을 선점하기 위한 수주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 LS일렉은 변압기, 효성重은 밸브 앞세워

LS일렉트릭은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국내 최대 규모 전력·에너지 전시회 '일렉스 코리아 2026'에서 인천 신부평 변전소에 연내 공급할 예정인 500메가와트(MW)급 HVDC 변환용 변압기 모형을 부스 전면에 내세워 자체 기술력을 강조했다. HVDC 변환용 변압기는 교류와 직류가 교차하는 변환 과정에서 전압을 정밀하게 조절해 송전 효율과 계통 안정성을 높이는 주요 설비다.

효성중공업 역시 현재 가동 중인 200MW급 HVDC 양주 변환소 모형과 자체 소자 기술이 적용된 스태콤 밸브(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 실물을 앞세워 전시했다.

두 회사가 각각 내세운 HVDC 변환용 변압기와 스태콤 밸브는 초고압 HVDC 시스템을 구성하는 양대 핵심 기기다. 밸브가 교류와 직류를 변환하며 시스템의 전체 흐름을 제어하는 뇌의 역할을 한다면, 변압기는 전압 수준을 계통에 맞춰 조절하는 전력망의 심장 역할을 한다. 각자 상용화에 성공한 기기를 앞세워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의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일렉스 코리아 2026'에 마련된 효성중공업 부스에 양주 전압형 HVDC 변환소 모형과 스태콤 밸브가 전시돼 있다./최지희 기자

◇ 전인미답의 길… 무결점 안정성 강조

이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은 서해안 지역의 원전과 해상 풍력, 태양광 등으로 만든 전력을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주요 수요처로 공급하기 위해 추진되는 국가 전력망 프로젝트다.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해저 케이블을 활용한 HVDC 방식을 채택해 송전 효율을 높이는 게 골자다.

특히 사업의 핵심인 전압형 HVDC는 기존 전류형 방식과 달리, 실시간 전력을 양방향으로 보낼 수 있어 출력 변동이 심한 신재생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차세대 전력망 기술로 떠올랐다.

문제는 이 사업의 송전 규모가 8기가와트(GW)로, 대형 원전 8기를 한꺼번에 가동하는 것과 맞먹는 대용량이라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이 아직 가보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인 데다 단 한 번의 사고로도 국가 산업 전체가 마비될 수 있어 안정성 확보가 최대 관건이다.

이에 이날 전시회에서 LS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일제히 '무결점 안정성'을 강조했다. LS일렉트릭은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3GW급 '북당진~고덕' 프로젝트와 4GW급 '동해안~수도권' HVDC 사업에 핵심 설비를 공급하며 1조원 이상의 수주액을 올린 실전 경험을 앞세웠다.

이를 토대로 글로벌 3대 HVDC 기업인 GE 베르노바와의 협력을 통해 검증된 설계 역량을 확보하고, 이를 부산 HVDC 전용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겠다는 전략이다.

강민찬 LS일렉트릭 계통솔루션영업팀 팀장은 "HVDC 기술은 이미 상당 부분 확보했으며 시스템적 엔지니어링 부분을 고도화해야 하는 단계"라며 "LS일렉트릭이 20여년간 HVDC 계통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글로벌 선진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내재화의 길이라고 판단해 GE와 협력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순수 국산화' 내세운 효성… 내년이 분수령

효성중공업이 2024년 7월 준공한 200㎿(메가와트) 전압형 HVDC 경기 양주변전소./효성중공업 제공

효성중공업은 시스템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하는 자체 개발 기술을 통해 '순수 국산화' 선점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날도 효성중공업은 국내 최초로 전압형 200MW급 HVDC 경기 양주변전소를 차질없이 운영하고 있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다만 메가와트급과 기가와트급 HVDC는 제어 난도 등의 측면에서 기술적 격차가 커, 대용량 운용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추가 기술 개발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김경호 효성중공업 전력PU DC시스템사업팀 매니저는 "양주변전소 상업 운전으로 검증한 제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압형 HVDC 설비의 대용량화와 운용 안정성을 고도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며 "최근 글로벌 빅테크들도 잇따라 양주변전소를 방문해 설비를 확인하고, AI 데이터센터용 대규모 전력 공급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 업계 관계자는 "8GW급 사업의 관건은 초대형 설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역량"이라며 "국내 기업들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규모의 설계 단계부터 속도전을 벌이고 있어 내년에는 본격적인 실전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주도권 경쟁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