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화 필리조선소./한화 제공

"미국이 3억3450만달러(약 4800억원)를 들여 40개월이나 걸려 만들어야 하는 배를, 한국은 5500만달러(약 800억원)에 6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다. 미국 조선업 부활은 값비싼 환상이며, 한국 등 동맹국 조선소를 활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안보 대안이다."

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국 내 영향력 면에서 3대 싱크탱크로 꼽히는 케이토 연구소의 콜린 그래보우 연구원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국제해양안보센터(CIMSEC) 기고문에서 미국 정부의 조선업 부활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메이드 인 USA' 집착이 오히려 안보 효율성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하며, 붕괴한 공급망을 보조금으로 복원하려는 시도는 현실 가능성이 낮다고 일축했다.

대신 이미 세계적인 역량을 갖춘 한국과 일본을 미 해군의 파트너로 삼는 것이 무너진 미국 안보를 지탱할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최근 미 의회예산국(CBO)을 비롯한 미 조야에서도 이 같은 현실론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 "美 조선업, 경쟁력 상실... 비용 6배·시간 7배 격차"

미국 조선업의 붕괴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 없는 일반 상선 분야에서도 한국·중국과의 격차가 비교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어진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래보우 연구원은 "현재 미국에서 건조 중인 알로하급(3600TEU급) 컨테이너선의 척당 건조 비용은 3억3450만달러(약 4800억원)에 달한다"며 "이는 중국보다 6배 비싼 가격이며, 건조 속도는 한국보다 7배 느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 조선소의 전 세계 상선 건조 점유율이 0.04%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며 "가격과 납기 면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한 산업을 세금으로 연명하는 건 안보 전략이 아닌 예산 낭비"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워싱턴 정가와 트럼프 진영이 초당적으로 추진 중인 '미국 선박 지원법(SHIPS Act)'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 법안은 250억달러(약 36조원)의 연방 예산을 투입해 낙후된 조선소 인프라를 재건하고, 290여척 수준인 미 해군 함정을 355척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에릭 랩스 미 의회예산국 해운 선임분석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숙련공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예산을 늘려도 함정 건조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보우 연구원도 "배를 건조할 숙련된 용접공과 엔지니어, 부품을 공급할 생태계가 미국 내에 전무한 상태에서 보조금 투입은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 "한화 진출, 만병통치약 아냐… 구조적 장벽 높아"

그래보우 연구원은 한국 조선사들의 미국 진출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제기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이 1억달러(약 1440억원)에 인수한 미 필리 조선소를 두고 기대감이 높지만, 미국 조선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의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 전문성이 유입된다고 미국 조선업의 고질적인 병폐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건 오산"이라며 고비용 구조와 붕괴된 공급망은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외국 기업이 미 조선업에 진출했다가 쓴맛을 본 사례도 있다. 1990년대 유럽 최대 조선사였던 크베르너 그룹은 선진 기술과 자본을 앞세워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1997년 재개장했으나, 미국 특유의 강성 노조 문화와 비효율적인 부품 공급망을 극복하지 못했다. 당시 크베르너는 막대한 주 정부 보조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원가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고, 결국 수년 만에 지분을 정리하고 철수해야 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의 기술 도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지적이다. 미 싱크탱크 허드슨 연구소 등의 안보 전문가들은 미 해군의 차세대 호위함인 '콘스텔레이션급' 사업 실패를 예로 든다. 미 해군은 2020년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사의 우수한 설계를 도입해 건조에 나섰으나, 미국 내 공급망 문제와 숙련공 부족 등으로 건조가 3년 이상 지연되고 비용이 급증했다.

미국 강경파가 옹호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법 등 규제 또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조달하는 물품의 60~75%를 미국산으로 쓰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그래보우 연구원은 "현재 미국에서 건조되는 화물선조차 핵심 심장인 엔진은 한국산, 프로펠러는 중국산을 수입해 조립하는 실정"이라며 "미국 본토 건조를 고집하더라도 글로벌 공급망이 차단되면 배를 완성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 "안보 위해선 존스법 풀고 동맹국 활용해야"

이 같은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할 때, 그는 규제 완화를 통해 동맹국을 활용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유사시 신속하게 전력을 보강하려면 압도적인 건조 역량을 갖춘 한국과 일본 조선소를 미 해군의 파트너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내 건조를 고집하는 존스법(Jones Act)이 오히려 경쟁을 차단해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었다"며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내 물자 수송 시 반드시 미국 건조·운용 선박만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미국 해운·조선업의 고비용 구조를 고착화한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래보우 연구원은 "미국이 안보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비효율적인 국내 생산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역량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라며 "미국 내 생산 고집은 합리적인 산업 전략이 아니라, 지나간 제조업 시대에 대한 과거의 향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