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로 인해 지난해 한국을 빠져나간 고액 자산가의 수가 전년 대비 2배 수준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세율 인하 대신 연부연납 기간 연장 등 납부 방식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납세 부담과 자본 유출을 줄이고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3일 대한상의가 발표한 '상속세수 전망 분석 및 납부 방식 다양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한국 고액자산가 순유출 잠정치는 2024년 1200명에서 지난해 2400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영국,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수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50~60%에 달하는 상속세가 자본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행 상속세 제도가 유지될 경우 상속세수 규모는 2024년 9조6000억원에서 2072년에는 35조8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상속세는 지난 수십 년 간 제도 변화 없이 세수 규모만 증가해 왔다. 상속세 과세 인원은 2002년 1661명에서 2024년 2만1193명으로 약 13배 급증했다. 총세수 대비 상속세수 비율은 같은 기간 0.29%에서 2.14%로 늘었다.
대한상의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키고 자본 축적을 저해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70년부터 2024년까지의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세수 비율이 높을수록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는 뚜렷한 음의 상관관계가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대한상의는 ▲현재 10년인 상속세 일반재산 연부연납 기간을 20년으로 늘리거나 최소 5년의 거치 기간을 도입 ▲상장주식의 현물납부 허용 ▲주식평가 기간을 기준일 전후 각 2개월에서 2~3년으로 확대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속세 납부세액이 총 2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적용되는 연부연납 제도는 현재 가업상속 중소·중견기업에만 최대 20년 분납 또는 10년 거치 후 10년 분납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 반면 개인과 대기업은 거치 기간 없이 10년 분납만 허용된다.
상속세 실질부담률은 분납 기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반재산에 적용되는 10년 분납의 실질부담률은 일시납부 대비 70% 수준인 반면 가업상속 중소·중견기업에만 적용되는 20년 분납은 51.4%, 10년 거치·10년 분납은 32.3%까지 낮아진다.
대한상의는 또 연부연납의 경우 매년 세금을 내고 남은 잔액에 대해 국세환급가산금이 부과되는데, 올해 기준 요율이 3.1%로 과중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상속세는 납부 기간이 긴 점을 고려할 때 연부연납의 가산율 인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높은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기업투자 위축, 주가상승 부담, 경영권 매각 등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라며 "상속세 납부방식 개선만으로도 납세자의 실질 부담을 크게 줄여 기업투자 확대와 경제활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납부 방식의 유연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