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서는 전체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면 좋겠다. 하지만 한국에 반도체 등 중요 산업이 있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원자력발전소와 재생에너지 수준을 얼마로 할지, 원전의 경직성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숙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정책토론회'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김 장관은 "재생에너지는 당장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햇빛이 없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어떻게 할지가 문제다. 한국은 동서 길이가 짧아 햇빛이 비치는 시간이 짧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열린 토론회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반영된 대형 원전 2기 건설을 비롯해 장기 전원 구성 논의를 위한 자리였다. 김 장관은 지난해 말, 원전 2기와 관련해 두 번의 토론과 국민 여론 수렴 과정을 제12차 전기본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부는 지난달 30일 1차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김 장관은 원전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우려를 내비쳤다. 김 장관은 "당장 올해 봄과 가을부터 전력을 적게 쓰는 시기에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원전의 경직성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과제"라면서도 "그렇다고 (재생에너지를 줄이는) 다른 길을 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지금의 35기가와트(GW)에서 100GW로 늘리겠다고 약속했고 이행해야 한다"며 "한국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전기요금을 고려한 에너지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원전의 경직성은 물리적·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원전은 발전단가가 낮아 기저 전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리해서 전력 수요의 시간대별 변동을 맞추는 부하추종을 출력 조정은 쉽지만, 발전단가는 비싼 LNG 발전으로 했던 것"이라며 "최신 원전인 APR1400은 부하추종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현재는 80% 출력까지 감발을 적용하고 있지만, 2032년부터는 50%까지 일일 감발 운전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정익 카이스트 교수 역시 "원전의 출력 제어 문제는 물리적, 과학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못 한 것"이라며 "한국수력원자력이 기후부 소관이니, 빨리 출력 제어 기술을 개발하라고 하면 되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원전과 달리 재생에너지는 물리적으로 출력 제어를 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며 "현재 데이터상으로 우리가 원할 때 풍력 발전이 이뤄질 확률은 2%, 태양광은 10%다. 태양광의 경우 100번 요구하면 10번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 산업을 생각하면 재생에너지만으로 이뤄진 에너지 정책은 위험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무환 SK이노베이션 에너지설루션 사업단 단장은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는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 규모로,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의 경우 하나의 단일한 전력원에서만 전력을 공급받아서는 안 된다"며 "대규모 전력 수요자인 기업 입장에선 전력의 절대 규모, 조정력, 구축 시간을 종합적으로 선택해야 하기에 전력 옵션을 하나만 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아마존, 구글과 같은 미국 기업을 예로 들었다. 김 단장은 "글로벌 기업은 재생에너지는 물론 기저 전원으로 LNG 발전, 중장기적으로 원전과 소형모듈발전(SMR), 차세대 원전으로의 전환을 꾀한다며 "대규모 기저 전원은 LNG와 원전이 나눠맡고 재생에너지는 전력 계통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통합하고 다양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이용해 균형을 맞춘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이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서혜 이(E)컨슈머 대표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이상적이지만, 전기요금 인상은 소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깨끗한 전력이면서도 비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자원이 있기에 이를 최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업계에서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주 원장은 "발전단가가 킬로와트시(KWh)당 60원인 원전과 180원인 에너지저장장치(ESS) 연계 태양광을 50대 50으로 섞으면 발전단가는 120원이 될 것이고, 이 정도는 합당한 발전원가"라며 "일정 규모 이상의 태양광 시설에는 하루 발전량의 절반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 ESS 설치를 의무화하고 원전과 태양광 비중을 같게 유지하는 정도로 태양광 발전 설비를 늘려가는 게 바람직한 에너지 믹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