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내 산업계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자동차와 석유화학 등은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선과 방위산업 등의 업종은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며 호황을 맞았다. 2026년 글로벌 경제를 움직일 주요 이슈에 대해 짚어보고 이에 따른 업종별 영향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강도시 경북 포항시에는 총 265개 철강업체가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공장은 355개. 이 중 가동 중인 곳은 317개다. 나머지 38곳은 기계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 가동 비용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높아진 전기세에 비해 바닥을 치는 철강제품 단가, 수요 침체 등이 맞물린 결과다.
대형 철강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제철은 올해 초 포항제2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2000년 강원산업이 현대차그룹에 인수되면서 현대제철이 운영하기 시작한 이 공장은 25년 만에 멈춰 섰다. 7~8년 전만 해도 수출 규모가 5000만달러를 넘어서던 현대제철의 핵심 공장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가동 중단만을 통보한 상황으로, 재가동 여부는 미정"이라고 했다.
2026년에도 철강산업은 부진을 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처한 구조적 침체와 관세 부담, 부동산·건설 수요 부진 등의 '삼중고'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특임교수는 "현재 철강시장이 처한 상황의 핵심은 우리 업체들의 생산능력과 수요의 미스매치(불일치)"라면서 "내수·수출 시장 둘 다 같은 형국으로,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글로벌 철강업계는 약 10년 만에 구조적 침체기에 들어갔다. 2016년에도 해외시장 침체, 공급과잉으로 철강을 비롯한 주요 제조업이 침체에 빠진 적이 있다. 하지만 글로벌 철강업계가 모두 비슷한 수준의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세계 총 조강 생산량은 18억8260만톤(t)으로, 전년 대비 0.8%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연간 조강 생산량은 6350만t으로 4.7% 줄었다. 글로벌 철강 업계에 비해 침체의 골이 더 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2025년 1~11월 우리나라의 누적 조강 생산량은 561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줄었다. 이 같은 감소세가 유지될 경우 작년 우리나라의 연간 조강 생산량은 6100만t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이는 2010년(5891만5000t) 이래 15년 만의 최저치다. 조강이란 쇳물을 부어 만든 최초의 고체 형태 철강 생산품을 뜻한다.
우리나라 철강업계가 휘청거린 건 약 4년 전부터다. 2022년부터 중국산 철강이 저가로 쏟아지면서 글로벌 철강 강국의 위상이 흔들렸다. 중국이 내수 침체로 나라 안에서 소화되지 않는 철강제품들을 저가로 수출하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철강 수출액은 2022년 하반기부터 하강 곡선을 그리다가 같은 해 9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21.2%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후 마이너스 행보를 지속하다 잠시 횡보했고,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째 역성장 중이다.
올해에도 중국의 내수 철강수요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철강협회는 올해 중국의 철강 수요가 전년 대비 1%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철강 감산을 공식화했다. 지난달 10~11일 열린 중국의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공급과잉'을 언급해, 향후 철강 감산·구조조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업황 개선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철강업 수익성이 10년 전 구조조정이 단행되기 직전인 2015년 수준까지 악화됐다"면서 "중국 정부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토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할지가 올해 철강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 수출 대상 국가의 '관세 폭탄'도 우리나라 철강업계가 넘어야 할 산이다. 미국의 50% 고율 관세 여파로 대미(對美) 철강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누적 기준 철강 수출액은 278억달러로 전년 대비 8.8% 감소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총 연간 누계 수출액이 7000억달러를 넘어섰지만, 철강업은 예외였던 셈이다. 대미 철강 수출액은 9월 기준 전년 대비 약 16% 감소했다. 작년 연말까지 철강업계가 부담한 관세 규모는 4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캐나다는 지난달 26일부터 한국을 포함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한 철강 저율관세할당(TRQ) 적용 기준을 100%에서 75%로 축소하고, 철강 파생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유럽연합(EU)도 수입산 철강 제품에 대한 연간 무관세 수입 쿼터를 줄였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대표 철강 수출국 중 하나인 베트남도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반덤핑 관세 부과에 나섰다. 자국 내 외국산 철강재 수입이 크게 증가해 베트남 철강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연구원(KIET)은 올해 철강산업에 대해 전반적인 부진을 예상하면서, 특히 수출 부문이 침체가 깊어질 것으로 봤다. 산업연구원은 '2026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IT 산업과 바이오 산업이 13대 산업 전체 수출의 증가를 주도할 것"이라면서 "소재 산업군 수출은 소폭 감소할 전망"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철강산업 수출액은 작년 대비 5.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수요의 핵심이던 부동산·건설산업의 전망이 어두운 점도 철강산업 부진의 주요인이다. 건설용 철강재 소비량은 2024년 기준 약 4780만t으로, 최근 10년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건설업계는 주택을 중심으로 2029년까지 공급 감소 국면을 맞은 만큼 봉형강(봉강, 형강) 등 건설용 철강재의 수요 회복도 요원한 상황이다. 작년 건축 허가는 10년 평균 대비 18.1% 감소했고, 건축 착공은 16% 감소하며 물량 기준 부진이 이어지는 상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건설투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13.2%) 이후 최저 수준인 9.0%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외 정책 기관들이 우리나라 건설투자가 올해 2%대 내외로 반등할 것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기저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민간건설 관련해서는 여전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옥석 가리기'가 어렵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올해 사회간접자본(SOC) 등 인프라 투자가 소폭 늘어날 수 있지만 건설경기 자체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기는 어렵다"고 했다.
여야가 공동 추진한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을 두고도 업계에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향후 철강산업 재편의 뜻도 밝혔지만, 이것으로 산업의 회복을 유도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친환경 철강 공정인 '수소환원제철' 설비 전환에 대한 직접 보조금과 전기요금 인하 등이 필요하다고 건의하고 있다. 대형사 위주로 범용 철근·전기로 축소, 고부가·저탄소 판재·특수강 육성 등 철강 산업 고도화가 진행 중인 만큼 중견업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민동준 교수는 "1~2월 중 K-스틸법의 시행령이 만들어질 예정이지만, 문제는 중장기적 측면의 내용이라는 점"이라면서 "시장의 수요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철강업계가 버틸 수 있도록 시행령에서 정부의 강한 의지가 드러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