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부터 추진돼 온 해상풍력 사업에 제동을 걸면서 한국 시장도 '유탄'을 맞게 됐다. 미국의 사업 중단으로 인해 글로벌 해상풍력 개발사들이 재정난을 겪거나 투자를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참여로 시장을 활성화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29일 재생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3일(현지 시각)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해상풍력 발전소가 건설 중인 해역에 대한 임대를 즉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해상풍력을 하기 위해선 미국 연방 정부 소유 해역에 발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연방 정부가 해역 임대를 중단하면 발전설비 운영은 물론 설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더그 버검 미국 내무장관은 최근 국방부가 발표한 보고서를 근거로 "해상풍력 터빈의 회전 날개가 군 레이더를 교란할 수 있다"며 해상풍력 발전소에 대한 해역 임대를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공사 중단이 불가피해진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총 5건이다. 미국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인 '코스털버지니아'와 뉴욕주 앞바다에 설치되고 있던 '엠파이어 윈드1', '선라이즈 윈드', 로드아일랜드주와 코네티컷주의 전력 공급을 맡을 예정이었던 '레볼루션 윈드'와 '바인야드 윈드1'이 대상이다.
해상풍력 산업 단체인 오션틱 네트워크에 따르면 5곳의 해상풍력 시설이 완공돼 최대 용량으로 가동할 경우 약 6기가와트(GW)의 전력이 생산될 예정이었다.
해상풍력 개발사들은 공사 중단으로 성장성과 재무 건전성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늘면서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세계 최대 풍력 개발사인 덴마크 오스테드의 주가는 트럼프 행정부의 발표가 나온 직후 주가가 11% 넘게 떨어졌다. 오스테드는 레볼루션 윈드, 선라이즈 윈드 프로젝트 개발사다. 코스털버지니아 개발사인 도미니언 에너지 주가도 같은 날 3.7% 하락했다. 엠파이어 윈드1 개발사인 노르웨이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 주가도 1% 내렸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해상풍력을 확대하려던 한국의 계획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글로벌 해상풍력 개발사들이 미국 시장에서 실패해 재정난에 부딪힐 경우 한국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역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상풍력은 개발 금액이 큰 만큼 오스테드, 에퀴노르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여러 국가에서 개발사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현재 오스테드와 에퀴노르는 한국에서 해상풍력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오스테드는 인천 앞바다에서 진행 중인 '인천해상풍력' 프로젝트는 오는 2030년 초부터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에퀴노르는 울산 앞바다에서 '반딧불이'와 '동해1' 등 2건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해상풍력 업체 고위 관계자는 "미국에서 사업이 좌초할 경우 해상풍력 개발사들은 재무 건전성에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에서도 최근 수 년 간 개발비가 상승해 수주했던 사업을 포기하거나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에서 지난 2023년 진행된 해상풍력 사업 입찰에는 참여한 회사가 한 곳도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인건비가 크게 올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도 크게 상승해 비용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덴마크와 독일에서 진행된 입찰 역시 응하는 업체가 나오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유럽 해상풍력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으로 눈길을 돌리는 개발사들이 많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이마저도 막혀버린 상황"이라며 "한국 시장이 기회인 것은 맞지만, 재무 건전성에 비상이 걸린 글로벌 개발사들이 사업 진행을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