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이 중형 조선사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 지원을 3년 만에 재개하겠다고 밝히면서 조선업계의 신규 수주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계약대로 선박을 인도하지 못할 경우 금융 기관이 선주에게 선수금을 대신 환급해 주기로 약정하는 보증을 뜻한다.

전남 해남군 화원면에 자리한 대한조선. /뉴스1

2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황기연 한국수출입은행장은 지난 21일 경남 창원의 케이조선(옛 STX조선해양)을 찾아 경영이 정상화된 중형 조선사를 위해 1500억원 규모의 RG를 신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출입은행이 RG 지원에 나서는 것은 지난 2022년 이후 처음이다.

RG는 선박 건조 계약을 맺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선주가 선박 건조나 인도가 제 때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손실 보전을 위한 수단으로 RG 발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중형 조선사들은 지난 3월 "해외에서 선박을 수주하기 위해선 RG의 한도를 확대하고 더 많은 금융 기관이 발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이 RG 지원에 나서면서 중형 조선사들은 신규 수주 여력을 확보하게 됐다. HJ중공업과 대한조선, 케이조선 등 중형 조선사들은 기존에 보유했던 RG를 최대한 소진하며 선박을 수주해 왔다.

중형 조선사 관계자는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선박 인도가 완료돼야 RG의 한도가 살아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신규 지원은 수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수출입은행이 지원하기로 한 RG 1500억원은 작년 전체 발급 규모의 10%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수출입은행을 포함한 금융 기관들이 RG 발급 한도를 현실에 맞게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조선 업황이 개선되면서 대형사 뿐 아니라 중형 조선사 역시 실적과 신용도가 개선됐는데, RG 한도에는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22년에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했다가 RG가 안 나와 계약이 취소된 사례도 있었다"며 "현재 RG 한도는 불황이 이어지던 2021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형 조선사들이 놓친 수주 물량을 중국 조선사들이 가져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A조선사의 RG 한도는 4억5000만달러(약 6669억원)인데 이는 2021년도 부여받은 금액이다.

황기연(왼쪽) 한국수출입은행장이 19일 경남 창원에 있는 케이조선을 찾아 김찬(오른쪽) 케이조선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수출입은행 제공

다만 정부와 금융 기관들은 업계의 요구대로 RG 한도를 신속하게 늘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업 실적이 개선돼도 신용등급에 반영되는데 시차가 있는 데다, 조선업이 변동성이 큰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치 못한 부실이 발생해 금융사들이 대규모 피해를 떠안을 위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RG 한도 부족이나 미발급으로 중형 조선사들이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업계와 소통하고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