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미국 제련소 걸설 추진 과정에서 회사 지분 약 10%를 미국 정부와 세우는 합작법인(JV)에 넘기기로 한 가운데 영풍·MBK파트너스가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이르면 오는 22일 나올 전망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원을 투자해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면서 '크루서블 JV'를 설립했고, 이 JV에 고려아연 지분 10.59%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넘기기로 했다.
크루서블 JV는 미국 전쟁부·상무부가 최대주주(40%)로 참여하고, 고려아연은 10%로 참여한다. 나머지 50%도 미국 내 전략적 투자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미국 측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탈(脫)중국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제련소 건설을 적극 추진하는 미국 정부 입장을 고려하면 JV 지분 10%는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 측 우호 지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는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의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한 최 회장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추진됐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0월 말 경주 한미 정상회담을 수행하며 방한하면서, 최 회장을 다시 만나 '최대한 빨리, 많은 물량'을 요구하며 제련소 추진을 위한 행정·금융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이 오는 26일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하고 220만9716주를 신주로 발행하면 의결권 주식 기준으로 MBK·영풍 측 지분은 43.42%가 되고, 최 회장 측 지분은 18.76%로 올라간다.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8.15%)와 신설 JV(11.21%), LG화학(1.99%) 등에 국민연금(5.08%)까지 합하면 최 회장 측 지분은 총 45.53%로, MBK·영풍 측 지분(43.42%)을 넘어서게 된다.
국민연금을 그간 최 회장 우호 지분으로 분류하기 어려웠지만, 최근 '홈플러스 사태' 등 MBK의 기업 인수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올해 3월 주주총회(주총)에서도 최 회장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내년 3월 주총에서 이사회 추가 진입을 노리는 MBK·영풍 입장에서는 JV에 대한 유상증자로 애초 유리하다고 여겨졌던 표 대결 구도가 뒤집히는 셈이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현재 최 회장 측 11명, MBK·영풍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올해 3월 주총에서 MBK·영풍 측이 신규 이사 3명을 진입시킨 데 따른 것이다.
지난 주총에서 고려아연은 MBK·영풍 측의 이사회 장악을 막기 위해 이사회 최대 정원을 19명까지 늘린 바 있다. 이 중 이사 4명이 직무정지 상태로, 주총에는 15명이 참여한다. 최 회장 측 일부 이사들의 내년 주총에 임기가 만료되면서 신규 이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그 이후 이사회 구도는 9대 6이나 8대 7 정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하지만 이번 유증을 통해 JV로 넘어가는 지분(의결권 기준 11.21%)이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활용되면 이 같은 이사 수 격차는 MBK·영풍 측 기대만큼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9일 열린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심문에서 양측 주장을 듣고 고려아연 측에 미국 정부가 제련소 지분을 원했다는 주장에 대한 석명자료를 이날(21일)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유상증자 대금 납입기일을 오는 26일로 정한 만큼, 그 전에 결정을 내리겠다는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22일께 가처분 신청 관련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법원이 고려아연 측 석명을 받아들여 가처분을 기각하는 경우 미 제련소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내년에 부지 조성을 시작해 2029년부터 단계적 상업 가동에 들어간다는 것이 고려아연의 계획이다.
이와 함께 최 회장 측은 내년 3월 주총에서 MBK·영풍 측의 이사회 진입 공세에 맞서 이사 자리를 1자리 이상 더 지켜내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구도를 이어가는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면, 이 같은 최 회장 측 방어 전략에 차질이 생긴다. 내년 3월 주총 기준일이 이달 31일인 만큼, 오는 26일에 유증 대금 납입이 이뤄지지 않고, JV 설립이 내년으로 미뤄지면 JV에 배정되는 신주의 효력은 이번 주총에는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 영풍·MBK 측과 최 회장 측 지분은 약 48.9%대 32.9∼38.6% 수준으로 크게 벌어질 것으로 추산된다. 이사회 구도가는 현재 최 회장 측 11명 대 MBK·영풍 측 4명에서 9대 6이나 8대 7 정도로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