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 간 산업용 전기 요금이 70% 넘게 오르자 부담이 커진 정유사, 석유화학 기업들이 '공장 옆 발전소'를 짓고 있다. 설비 가동을 위해서는 365일 24시간 내내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데, 한국전력에서 전기를 사는 것보다 직접 전기를 만들어 쓰는 게 더 저렴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의 100% 자회사인 HD현대이앤에프는 충남 서산에 있는 HD현대케미칼에 전기, 스팀(증기)을 공급하기 위해 LNG 발전소 1기를 짓고 있다. 최대 발전 용량은 290㎿(메가와트)로 내년 3분기 상업 가동을 목표로 두고 있다.
스스로 발전소 건설에 나서는 건 저렴한 전력 공급이 가장 큰 이유다. 한전 전력데이터 개방 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산업용 전기 요금은 1킬로와트시(kWh)당 179.2원으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000660)는 반도체 공장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경기 이천, 충북 청주에 각각 1기씩 LNG 열병합 발전소(580㎿)를 운영하고 있는데, 발전 단가가 100원대 초중반인 것으로 전해졌다. HD현대이앤에프도 비슷한 단가에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이앤에프는 쓰고 남은 전기, 스팀을 인근 공장에 기존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할 예정이다. LNG 열병합 발전소는 전기뿐만 아니라 원유 정제, 석유화학 제품 생산의 핵심인 스팀도 만들어 판매할 수 있어 발전 효율성이 높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석유화학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 전기 요금 지원 방안이 빠지면서 주변 기업들도 우호적이라고 한다.
2027년 샤힌 프로젝트 가동을 앞둔 S-Oil(010950)(에쓰오일)도 울산 온산 공장에 LNG 기반 발전 시설 2기를 더 짓고 있다. 기존 2기에 더해 내년 말부터 총 4기를 운영해 121㎿dml 전기를 생산하고, 온산 공장에 전부 쓴다는 구상이다. 에쓰오일 온산공장의 자가 발전 비율은 현재 10%인데, 가동 후에는 42%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울산 콤플렉스(CLX)에 300㎿급 LNG 기반 열병합 발전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여수공장에서 하루 15㎿의 전력을 생산하는 자가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 한전을 거치지 않고 특정 산업 단지에 전기를 팔려면 산업통상부 전기위원회로부터 구역 전기 사업자 허가를 받아야 한다. HD현대이앤에프에 이어 한화에너지도 자회사인 여수에코에너지를 통해 500㎿ 규모의 LNG 발전소를 여수 국가산업단지에 짓고, 인근 공장에 에너지를 공급할 계획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업계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건 전기를 저렴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라며 "산업용 전기 요금 인하가 어려우면 구역 전기 사업자 허가라도 늘려 기업이 더 낮은 가격에 전기를 공급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전은 널뛰는 원료 가격, 불안정한 전기 공급 등을 고려하면 정유사들이 자체 조달하는 전기의 가격이 기존 전기료보다 저렴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전력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설비 문제로 정전을 겪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실제로 지난 3월 LG화학(051910)과 롯데케미칼(011170)의 대산공장에선 구역 전기 사업자의 설비 문제로 정전을 겪어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과거 민간 LNG 발전 사업자였던 포천민자발전은 사업성 악화로 2020년 사모펀드에 매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