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붐으로 에너지 저장 장치(ESS) 수요가 급증하면서 ESS용 배터리의 핵심 재료인 리튬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미리 저렴하게 사둔 리튬 재고 가격이 뛰어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18일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탄산리튬 가격은 전날 기준 kg당 95위안(약 2만원)으로 지난해 6월 18일(93.5위안) 이후 1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6월 리튬 가격이 57위안대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6개월 만에 2배 가까이로 올랐다.

그래픽=정서희

리튬 가격이 뛰는 배경에는 전기차(EV) 배터리에 이어 ESS 배터리 수요 급증이 자리 잡고 있다. ESS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장치다. 전력망 안정화, 신재생에너지 효율 증대 등에 사용히는 거대한 '보조 배터리'에 해당한다. 시장조사 기관 SNE은 미국의 ESS 수요가 2025년 59GWh에서 2030년 142GWh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ESS 시장에서는 화재 위험이 낮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주로 쓰인다. 중국 ESS 시장은 LFP가 99% 이상, 유럽 시장에서도 90%에 육박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LFP 배터리가 ESS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LFP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가 리튬이다.

포스코퓨처엠(003670), 에코프로(086520), 엘앤에프(066970) 등 양극재 기업들은 리튬 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성이 엇갈린다. 리튬을 구매할 때와 양극재로 만들어 판매할 때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가격이 낮을 때 리튬을 구매한 후 제품 판매 시점에 리튬 가격이 오르면 재고 평가 이익이 발생한다.

거꾸로 리튬 가격이 떨어지면 미리 확보한 재고 가격이 떨어지면서 재고 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포스코퓨처엠은 2023년 사업보고서에 보유한 광물 평가 가치가 하락하면서 742억원의 재고 평가 충당금을 쌓았다고 공시한 바 있다. 당시 재고 평가 충당금 요인을 제외했다면 에너지 소재 부문에서 652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각 기업의 리튬 재고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비축량이 충분하진 않다. 올해 정부가 제시한 비축 목표는 100일인데 평균 비축 일수는 68.5일 정도다. 1일분은 국내 산업계가 하루 동안 쓰는 희소금속의 양을 뜻한다.

리튬 가격이 오르면 양극재를 구매하는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 배터리 셀 기업은 단기적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다. 계약 조건마다 다르지만, 리튬 가격이 오르면 양극재 판매 가격도 오르도록 설계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리튬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 세계 리튬의 65%가 중국에서 제련되는데,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공급을 관리하고 있어서다. 지난 8월 중국 정부는 중국 배터리 기업인 CATL의 장시성 리튬 광산 생산을 중단시켰다. 정부가 리튬 과잉 생산을 단속하기 위해 광산 채굴 허가를 연장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ESS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중국 정부의 과잉 공급 억제 의지 등으로 리튬 가격이 크게 올랐다. 중국 정부가 과잉 생산·출혈 경쟁 단속을 계속한다면, 수급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리튬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