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 고려아연이 미국 현지에 전략 광물 제련소를 건설한다. 미국 국방부와 현지 방산 기업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미국 정부가 한국 민간 기업이 설립하는 법인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는 것은 이례적인 사례다.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맞선 한미 '전략 자원 동맹'을 공식화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 날 이사회를 열고 미국 제련소 설립 안건과 함께 미 국방부 및 현지 방산 관련 투자자들이 제련소에 직접 투자하는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의 직접 투자 방안에는 현지 제철소 법인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안건이 통과되면 고려아연은 미국 주도의 탈(脫)중국 희토류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격상된다.
미국 정부가 기업의 주주가 되면서까지 제련소를 유치하려는 것은 현재 미국의 안보가 처한 절박한 현실 때문이다. 반도체, 방산, 우주항공 등 미국의 핵심 산업은 중국산 희토류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구조다. 특히 포탄과 미사일 제조에 필수적인 안티모니, 비스무트 등의 대중국 의존도는 70%를 상회한다.
미국은 자국 내 공급망 재건을 시도했으나, 환경 규제와 채산성 문제로 제련 산업 생태계가 붕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아연은 유일한 대안으로 꼽혔다. 고려아연은 아연·연·동 등 기초 금속뿐 아니라 안티모니, 비스무트, 게르마늄, 갈륨 등 희소 금속을 광석에서 불순물 없이 뽑아내는 세계 최고의 습식 제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 7월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 운영 기업인 MP머티리얼즈와 4억달러 규모 우선주 인수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고려아연이 지을 제련소에 대한 투자도 전략 광물 공급망을 미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이번 이사회에서 10조원 규모 미국 제련소 투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고려아연과 미국 상무부·국방부, 미국 방산전략기업이 약 2조8000억원 규모의 합작법인(JV)을 세우고, 이 JV에 미국 측이 6억9000만 달러(약 1조원)를 투자하는 방식이다. 12억5000만 달러(약 1조8000억원)는 JV가 현지에서 차입한다. 나머지 7조2000억원은 미국 정부와JP모건이 절반씩 차입해 조달하되 고려아연이 연대보증한다. 이 같은 내용은 고려아연이 지난 13일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연 설명회를 통해 알려졌다.
고려아연은 향후 이 법인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계획인데, 고려아연 지분 10% 가량을 미국 측이 확보하는 셈이다. 3조원을 제외한 나머지 7조원은 미국 정부와 JP모건이 절반씩 차입해 조달하되 고려아연이 연대보증한다. 이 같은 내용은 고려아연이 지난 13일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연 설명회에서 확인됐다.
이번 투자 건은 지난 8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한·미정상회담 경제사절단으로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을 방문할 당시 발표한 미국과 광물 협력 방안을 구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0월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정책을 발표하자 미국 측에서 사업 진행에 속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지난달 말 강경화 주미대사와 미국에서 만나 현지 제련소 건설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했다. 강 대사와 면담에서 미 정부가 고려아연 측에 미국 내 제련소 건설을 직접 요청했다는 사실을 공유했다. 당초 60여 곳에 달했던 후보지를 추려내 현재는 최종 후보 지역들을 대상으로 투자유치 인센티브에 대한 제안서를 받아 세부 검토 중이다.
미국에 신설할 제련소는 고려아연의 울산 온산제련소를 모델로 한다. 온산제련소는 습식·건식 공정을 결합해 아연은 물론 안티모니, 게르마늄 등 전략·핵심광물을 함께 생산하는 구조다. 미국 제련소도 이런 통합 공정을 적용해 핵심 광물뿐 아니라 기초 광물까지 아우르는 첨단산업 소재의 공급 거점 역할을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