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에서 '핵심광물 재자원화'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핵심광물 재자원화는 폐배터리, 폐전자제품, 폐영구자석 등 폐자원에서 리튬·코발트·희토류 등 핵심광물을 회수해 산업 원료로 재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핵심광물 가격이 급락할 경우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지만, 광물 가격이 다시 오르거나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서는 경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1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SK온을 자회사로 둔 SK이노베이션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화학공학 분야 국제 저널에 등재했다고 최근 밝혔다.

희토류와 같은 핵심광물은 에너지 전환은 물론 항공우주·국방·첨단산업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소재다. 핵심광물은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매장량과 정제 능력이 집중돼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다. 각국은 공급망 다변화와 광물 비축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중이다. 특히 '자원 빈국' 한국 입장에서 자원 부족을 자력으로 해결할 유력한 대응 방안 중 하나로 재자원화가 꼽힌다.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연구원이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통해 회수한 탄산리튬을 소개하고 있다. / SK이노베이션 제공

SK온은 지난 8월 에코프로와 배터리 순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SK온은 미국 생산법인인 SK배터리아메리카에서 나오는 스크랩(불량품) 기반의 고순도 블랙파우더를 에코프로에 제공할 예정이다. 블랙파우더는 이차전지 스크랩과 폐배터리를 파쇄해 만든 검은 분말이다.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이 포함돼 있다. 에코프로는 블랙파우더를 활용해 양극재를 만들어 SK배터리아메리카에 되팔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 토요타통상과 손잡고 미국에 배터리 재활용 합작법인 'GMBI(Green Metals Battery Innovations, LLC)를 설립할 예정이다. GMBI는 폐배터리와 스크랩을 파∙분쇄해 블랙파우더를 생산하는 전문 공장이다. 연간 처리 능력은 최대 1만3500만톤 규모가 될 예정이다. 연 4만대 이상의 전기차 폐배터리와 스크랩을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다. 2026년 가동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프랑스 금속 재활용 기업 데리시부르그(DBG, Derichebourg)와도 배터리 재활용 합작법인을 지난 4월 설립했다. 두 회사는 공장 건설을 준비 중이다. 2027년 공장 가동을 시작해 연간 2만톤 이상의 사용 후 배터리 및 스크랩 처리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배터리 소재사인 에코프로도 핵심광물 재자원화에 적극적이다. 에코프로 관계사인 에코프로씨엔지는 국내외 이차전지 제조업체로부터 공정 중 발생한 불량품 등을 사와 양극재의 핵심 원료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추출한다.

핵심광물 재자원화의 사업성이 늘 좋은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아니다. 주요 광물 가격이 급등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희토류의 하나인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등과 같은 핵심광물 가격은 2010년 중국이 일본을 향해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급등했다. 2011년 기준 네오디뮴 가격은 톤(t)당 1만5000달러에서 25만달러까지 치솟았다. 디스프로슘 역시 톤당 10만9000달러에서 150만8000달러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가격 폭등 이후 수요 감소, 중국 외 공급원 탐색 노력이 더해지면서 가격이 점차 하락했다. 2021년 이후 전기차, 풍력발전 등의 분야에서 영구자석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다시 상승하기도 했다. 12월 현재 네오디뮴 가격은 톤당 14만9300달러, 디스프로슘 가격은 톤당 45만3900달러 수준이다.

사업 변동성은 크지만 핵심광물 재자원화는 자원 안보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정부가 전기차, 태앙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인 상황이라 한국은 앞으로 핵심광물이 더 필요해질 상황이기도 하다.

전기차 제조에는 내연기관차보다 약 6배의 광물이 필요하다. 풍력발전은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소보다 약 9배 많은 광물이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핵심광물 수요가 현재의 약 3.5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폐배터리의 재자원화율을 100%로 가정하면 2040년에 필요한 리튬의 22%, 니켈 28%, 망간 9%, 코발트 36%를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재자원화에 쓸 폐배터리는 아직 충분치 않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모델3'를 내놓은 2017년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전기차 배터리 사용 연한이 8~10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폐배터리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2027년까지 쏟아져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폐배터리가 대거 나오고 재자원화 시장이 대규모로 커지는 시기는 2026년 말 이후로 보고 있다"며 "시장이 열렸을 때 재자원화 관련 기술과 설비를 갖추지 못하면 기회를 잡지 못할 수 있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팔을 걷어부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2월 시행된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을 통해 재자원화 산업 육성 근거를 마련했다. 3월에는 '핵심광물 재자원화 활성화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10대 전략 핵심광물의 재자원화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내년에는 재자원화 설비 구축 보조 사업을 처음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국내에 재자원화가 가능한 기업이 200여 개 있는데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 규모와 수요를 파악 중"이라면서 "폐자원 수입 허가를 간소화하고 허가 기간을 늘리는 등 제도적인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