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주총)에서 우세를 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 전략적 동맹을 맺고 탈(脫)중국 희토류·전략광물 공급망에 들어가게 됐다. 미국 측과 세운 합작법인(JV)이 고려아연 지분 10%를 갖게 되면서, 미 정부가 최윤범 회장의 '백기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미국 내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 건설을 통한 미래 성장동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단행한다고 공시했다. '미국 제련소(U.S. Smelter)'로 명명된 이번 프로젝트의 투자 규모는 약 10조원(66억 달러)로, 운용자금과 금융비용까지 포함하면 총 11조원(74억 달러)이다.
우선 미 국방부와 투자자들이 함께 마련한 3조2000억원(21억5000만 달러)가 투입된다. 미 상무부는 칩스(CHIPS)법에 따라 미국 장비 조달 및 그 밖의 목적을 위해 자금 약 3100억원(2억1000만 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한다. 지난 11일에 설립한 외국 합작법인(JV) '크루시블메탈즈(CrucibleMetals)'를 통해 19억4000만달러(약 2조8508억원)를 조달한다. 여기에는 미 국방부(전쟁부)·상무부와 방산 전략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SI)가 참여한다.
나머지는 미국 정부의 정책금융과 보조금, 재무적 투자자(FI) 대출, 직접 투자를 활용한다. 고려아연은 전날 이사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안건을 의결했다. 투자 일정은 이날부터 2029년 말까지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확대와 미국 내 비철금속 및 전략광물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북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공시에서 밝혔다. 이어 미국 정부가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고려아연에 참여를 요청했다고 했다.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Clarksville)에 제련소를 짓는다. 이 지역은 전력 공급가가 타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해 전력비 절감 효과가 큰 만큼 가공비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차원의 각종 지원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제련소 건설과 관련해 고려아연은 내년 부지 조성 및 기반 공사, 설계·조달·시공(EPC) 업체 선정과 주요 장비 발주를 진행할 계획이다. 2027년 착공, 2029년 제련소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아연과 연, 동 공정 순으로 단계적 가동에 들어간다. 해당 시설은 연간 약 110만톤(t)의 원료를 처리해 54만t 규모의 최종 제품들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 제련소는 울산 온산제련소 모델을 기반으로, 약 65만㎡(약 20만평) 규모로 조성된다.
생산 품목은 총 13개 제품으로 아연·연·동 등 산업용 기초금속을 비롯해 금·은 등 귀금속, 그리고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카드뮴, 팔라듐, 갈륨, 게르마늄 등 핵심 전략광물이 포함된다. 또 반도체 황산도 생산된다. 이 가운데 11종은 미국 지질조사국(USGS)을 통해 발표된 미 내무부의 '2025년 최종 핵심광물 목록'에 포함돼 있다. 이는 미국의 국가안보 및 경제안보에 필수적이면서 공급 차질 위험이 높은 광물을 지정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주요 금속의 연간 목표 생산량으로 ▲아연 30만t ▲연 20만t ▲동 3만5000t ▲희소금속 5100t 등을 제시했다.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미 상무부 장관은 "테네시에서 추진되는 고려아연의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transformational deal)"라면서 "이를 통해 미국은 항공우주·국방,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자동차, 산업 전반,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13종의 핵심·전략 광물을 대규모로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내년 3월 열리는 고려아연 주총에서 최 회장 측이 경영권을 이어갈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현재까지 영풍과 MBK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44.24%를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은 19.41%를 갖고 있으며, 한화 등 우군을 포함 보유 지분은 약32%다.
나머지 24%가량은 국민연금(5%)과 소액주주가 가지고 있다. JV가 발행 주식 총수의 10%가량을 신주로 취득하게 되면 지분 배분은 최 회장 측에 유리하게 바뀐다. 영풍 측의 지분은 약 40%로 줄고, 최 회장 측 지분은 39%로 올라간다. 고려아연은 오는 16일 자기주식 68만10주를 소각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공시했다. 이에 발행주식 총수는 기존 1934만3263주에서 1866만3253주로 줄어든다.
미국 측과 합작법인 설립 소식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다. 고려아연 이사회 19인 중 6인의 임기가 3월 만료된다. 남은 15석 중 4석은 현재 직무가 정지된 이사의 자리다. 15석 중 과반 이상인 8석을 확보하는 것이 경영권 분쟁의 핵심이다.
직무정지, 임기만료를 제외한 9명 중 최 회장 측은 6명, 영풍 측은 3명으로, 여기에는 국민연금(약 5%), 소액주주들의 표가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기만료 6석 중 5명은 최 회장, 1명은 영풍 측이다.
이사회에서 영풍 측이 확보할 수 있는 최대는 4석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15석 중 7석으로,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고려아연은 8석을 확보한다. 영풍 측의 MBK가 '홈플러스 사태'로 금융감독원 징계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국민연금, 소액주주의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미국 정부 측의 지분 투자에 대해 소액주주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장담할 수는 없다"면서 "2027년 주총 때가 되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영풍 측 이날 오전 미국 측의 고려아연 지분 확보에 입장문을 내고 법적 조치 취하겠다고 밝혔다. 영풍 관계자는"이는 주주가치 훼손 및 재무안정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 판단한다"면서 "최 회장 측 이사진이 다수인 고려아연 이사회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설명 절차 없이 대규모 해외투자와 지배구조 변동 안건을 졸속 처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의 장기적 지속가능성과 주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즉시 법원에 제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