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한화에어로)와 현대로템(064350) 등 국내 방위산업 기업들이 유럽 지상무기 시장을 내년 핵심 사업으로 보고 수주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무기 공동 구매 대출 프로그램을 앞세운 현지 업체들의 견제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상황이 어렵지만 수출 목표치인 200억달러(약 29조원)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승부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방산업계에서는 특사 파견 외에 정부의 산업 협력안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오는 상황이다.
14일 방산 업계 등에 따르면 한화에어로는 유럽 내 다수 국가의 무기 획득 사업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먼저 루마니아의 보병전투장갑차량(IFV) 도입 사업이 있다. 규모는 약 5조13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레드백을 앞세운 한화에어로는 루마니아 현지 생산을 핵심 전략으로 설정해 홍보에 나섰다. 지난해 7월 루마니아와 1조3800억원 규모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으며 현지 공장 건설에 나섰는데, 이 공장에서 IFV의 현지화와 기술 이전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한화에어로의 경쟁 상대는 IFV 링스를 앞세운 독일의 라인메탈이다. 라인메탈도 한화에어로와 마찬가지로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전면에 내걸었다. 루마니아 현지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루마니아 내에서 IFV의 부품과 대공 방어용 탄약, 추진체 등을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루마니아에 센터를 세워 현지 인력에 링스의 운용과 생산, 유지·보수·정비 등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의 전략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EU의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 세이프(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에 참여한 국가다. 세이프는 1500억유로(약 255조원) 규모 군사 조달 기금으로, 유럽 재무장 프로그램 일환이다. 무기를 공동 구매하는 회원국에 낮은 금리로 대출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다만 무기 구매 회원국에 65%의 현지화를 요구한다. 루마니아 입장에선 한국 정부의 보증이나 대출보다 더 유리한 셈이다.
방산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경쟁국보다 현지화 비율을 높이는 것이 기업 수준에서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며 "그럼에도 사실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이 있어야 수주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현대로템은 유럽 내 K2 전차의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루마니아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노후된 지상 무기를 현대화하려는 수요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월 루마니아 경제부 장관 등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현대로템의 창원 공장을 방문한 바 있다. 현대로템은 폴란드 국영 방산업체 PGZ 산하 부마르 공장에 K2 전차 시설을 건설 중인데, 유럽 전진 기지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스페인의 경우 자주포 도입 사업이 공략 대상이다.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은 자주포 128문 도입을 검토 중이며, 사업 규모는 최대 45억1600만유로(약 8조원)로 평가되고 있다. 한화에어로는 K9 자주포와 K10 탄약 운반차 등 패키지를 앞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스페인은 아직 한국산 무기 체계를 구매한 적이 없다.
이 밖에 노르웨이와 에스토니아도 공략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노르웨이는 현재 한화에어로의 다연장 로켓 천무와 미국 록히드마틴의 하이마스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도 두 무기 체계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월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에서 한화에어로와 현대로템 전시관을 찾아 천무와 K2 전차 등을 살폈다.
스웨덴은 차세대 전차로 낙점한 레오파르트 2A8가 도입되기 전 전력 공백을 막기 위한 전차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의 K2 전차도 후보군에 포함돼 있어 추가 수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루마니아 모두 도입 규모가 크진 않지만 유럽 내 추가 수출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한국 방산의 올해 수출 목표치였던 200억달러 달성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2022년 역대 최고치 173억달러(약 23조원)를 기록한 방산 수출은 2023년 135억달러(약 19조원), 지난해 95억달러(약 13조원)로 2년 연속 줄었고, 올해는 지난해와 유사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에선 내년 방산수출 200억달러를 달성하려면 무기 획득 절차가 예측 가능한 유럽 수출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의 경우 계약 시점을 가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집트 K9 자주포 수출의 경우 성사되기 까지 13년이 걸렸다.
업계에서는 또 정부 차원의 확실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무기를 발주하는 국가에서 군사적, 산업적으로 완전한 동반자가 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별 방산 기업이 제공할 수 없는 혜택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 만큼 정부가 국가 차원의 방산 수출 전략을 짜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