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희토류를 정치적인 카드로 사용하는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무기화에 처음 나선 2010년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가 줄지 않은 상황이라 자원 안보 대책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일본 기업에 대한 희토류 수출 허가 절차를 평소보다 지연시키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양국의 긴장감이 고조한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 베이징 중국지질박물관에 희토류 중 하나인 세륨, 란타넘, 네오디뮴 등의 원소를 추출하는 데 사용되는 광물인 모나자이트 샘플이 전시돼 있다. / 로이터

양국은 2010년에도 희토류를 놓고 대립한 바 있다. 그해 9월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인 것이 계기였다. 당시 일본은 영유권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중국인 선장을 구속했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 금지로 맞대응했고, 일본은 중국인 선장을 풀어줬다.

중국은 그해 10월, 미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의 녹색산업 보조금 문제를 조사하겠다고 밝히자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도 중단했다. 그 여파로 국제 시장에서 희토류 가격은 최대 9배 치솟았다.

중국은 올해 들어 미국을 상대로 이미 희토류를 전략 무기 삼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2기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고율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지난 4월, 7종의 희토류와 이들을 함유한 자석 제품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하며 보복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했고, 미국은 중국과의 2차 고위급 협상에 나섰다. 결국 중국은 10월 30일 김해공항에서 가진 미중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희토류에 대한 대미(對美) 통제 조치를 내년 11월 10일까지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앤서니 앨버니즈 호주 총리와 11월 정상회담을 갖고 '핵심 광물 및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미·호주 프레임워크'에 공동 서명하는 등 희토류 공급망 다각화에 나선 배경이다.

중국은 유럽연합(EU)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중국이 지난 10월 9일 발표한 역외 수출 제한 조치에 사마륨·디스프로슘 등 희토류를 추가로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했다.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도 중국산 희토류가 0.1%라도 포함돼 있거나 중국의 정제·가공 기술을 이용한 경우 중국 정부로부터 수출 허가를 받도록 하는 등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EU 회원국이 무역 불균형 개선을 체감하지 못한다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새로운 관세 부과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 처음 희토류를 무기로 쓴 것으로 여겨지는 2010년, 일본과 충돌했을 당시 한국에서도 희토류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희토류는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릴 정도로 주요 산업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전 세계 공급망은 중국이 틀어쥐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10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59%를 담당한다. 희토류 정제 능력은 전 세계의 91%를 차지한다. 희토류 17종 중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이 들어간 영구자석 생산 점유율은 94%에 달한다. 영구자석은 같은 무게의 철 자석보다 최대 15배 자력이 세다. 영구자석은 전기차 모터, 풍력발전기 터빈, 로봇, 드론 등에 들어간다.

일본은 2010년 이후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해외에서의 채굴권 확보, 재활용 추진, 대체제 개발, 국가 비축이라는 4가지 희토류 확보 전략을 수립했다. 우선 일본은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를 중심으로 해외 희토류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는 희토류 광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2위 희토류 생산기업 호주 라이너스(Lynas)에 지난 2023년 2억 호주달러를 투자, 희토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에는 프랑스 카레스테르(Carester)에 1억 유로를 투자해 고성능 자석에 필수적인 희토류를 확보했다.

또한 일본 산업계는 정부 주도로 희토류 사용량을 절감하거나 대체하는 기술 개발에 나섰다. 도요타자동차는 전기차 모터에 필수적인 네오디뮴을 이전의 절반만 써도 되는 신형 자석을 개발했다. 신에쓰화학공업은 고성능 자석에 사용되는 중국산 희토류를 기존 대비 3분의 1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일본의 중국 희토류 의존도는 업계 추산으로 중국과 희토류 전쟁을 벌일 당시인 2010년 90% 이상에서 현재는 60~70%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한국의 2024년 기준 중국산 희토류 수입의존도는 79.8%로 일본보다 높다. 영구자석만 놓고 보면 중국산이 90%에 달한다. 정부도 2023년 핵심광물확보전략을 세우고 공급처 다변화, 해외광물자원개발, 비축 확대 등에 나섰다. 하지만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180일 이상치 비축하겠다는 목표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 주도의 해외 광물 개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설 국가 차원에서 자원 확보에 나섰던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자원 개발에 직접 투자하면서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여파다. 이후 광물자원공사는 재정 건전성이 좋았던 한국광해관리공단과 통합됐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을 비축하는 정책 말고는 재정지원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면서 "중국산 희토류와 관련 제품이 싼 만큼 다른 대안을 찾는 것에 대한 경제적 유인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는 "일본처럼 정권의 교체와 상관없이 자원 확보 관련 정책이 추진되면서 기업이 광물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