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JTBC

현역 시절 명(名)선수라고 해서 은퇴 후 명감독이 되는 건 아니다. 이는 회사 조직도 마찬가지다. 성과가 뛰어난 실무자가 리더가 됐을 때 반드시 팀을 고성과로 이끄는 건 아니다. 혼자 잘하는 것과 팀을 잘 이끄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여서다.

최근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현실감 넘치는 직장 생활을 보여줘 화제다. 주인공은 영업1팀장 김낙수 부장으로, 실무자 때는 영업 현장에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그런데 팀원은 부장인 그의 눈치를 살피고 피하기만 한다. 왜 김 부장은 팀원의 신뢰를 얻지 못했을까. 팀원의 시각으로 본 김 부장의 리더십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보자.

이정민 IGM세계경영연구원책임연구원 - 현 IGM세계경영연구원 인사이트연구소 프로그램·콘텐츠 기획 담당

낡은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김 부장은 한 팀원의 승진을 위해 팀이 이뤄낸 성과를 몰아주려 한다. 성과를 몰아주려는 팀원은 10년 넘게 승진하지 못한 김 부장의 동기, 허 과장이다. 김 부장은 막내 팀원을 불러 "내후년에는 꼭 승진하게 해줄 테니, 이번에는 허 과장에게 양보해 주자"라고 미안함을 표현한다. 눈시울을 붉히며 본인이 일을 못했냐고 묻는 막내 팀원에게 김 부장은 "잘했지만, 모두에게 고과를 똑같이 주면, 티가 안 난다. 똑똑하니 알아들을 거로 생각한다"라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조직 상황이라고 넘긴다고 해도 막내 팀원의 다친 마음은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기여한 만큼 인정받지 못한다는 박탈감, 성과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고과를 결정하려는 리더에 대한 원망, 그럼에도 이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력감, 이 조직에서 계속 일하는 게 맞을지에 대한 회의감에 대한 불안이 밀려온다.

김 부장은 조직 정의 이론이 제시하는 세 가지 공정성을 모두 훼손했다.

첫째 '분배의 공정성'이다. 성과나 보상이 결과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분배됐는가를 의미한다. 김 부장은 만년 과장에게 고과를 몰아줘 실제 성과를 낸 막내 팀원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지 않았다.

둘째 '절차 공정성'이다. 결정 과정이 객관적이고 투명했는가를 의미한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과정이 납득되면 구성원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김 부장은 객관적 근거보다 개인적 판단으로 점수를 매겼다. 당사자와 충분한 논의도 없었다.

마지막은 '상호작용 공정성'이다. 소통 과정에서 구성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대했는가를 뜻한다. 김 부장은 불편함을 피하듯 막내 팀원과 대화를 급히 끝냈다. 상황을 무마하려 한 셈이다. 이러한 리더십은 인재를 떠나가게 한다.

구인·구직 플랫폼 잡코리아가 지난 6월 전국 20~40대 남녀 직장인 1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봉이 높아도 다니고 싶지 않은 회사' 1위로 '비윤리적인 관리자가 있는 회사(34.5%)'가 꼽혔다. 이어 '회사 운영 방식과 가치관이 맞지 않는 회사(33.9%)' '보상 체계가 불공정한 회사(30.6%)가 뒤를 이었다.

종합하면 직장인은 돈보다 상식이 통하는 공정한 조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팀을 침묵하게 하는 일방적 독백

옆 팀의 팀장이 팀원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며, 김 부장도 자기 팀원과 적극 '소통'하기로 한다. 김 부장은 팀원과 차를 마시며 "경청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팀장이 되겠다"고 했는데, 팀원의 말을 끊고 계속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다. 대화의 핑퐁은 생기지 않고 훈수만 계속한다. 팀원은 '사무실에 돌아가 일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대화에서 피로를 느낀다. 김 부장은 팀원의 멍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시간을 진작 가져야 했다"며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하고 의욕이 넘친다.

상사와 부하 직원과 권력 거리가 멀수록 이야기가 오고 가는 대화보다 상사 혼자 말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상사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구성원은 말실수를 의식해 한마디하는 것도 신중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리더 스스로 권력을 가졌다고 느낄수록 대화의 독점은 심해진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리더가 대화를 독점하는 주된 원인을 가리켜 '주관적 권력감(subjective sense of power)'이라고 한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수록 '네 말도 맞지만, 내 말이 더 옳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팀원을 점점 침묵하게 한다. 리더가 팀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점차 사라지고 이는 리더에 대한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여론조사 업체 갤럽에 따르면, 팀원의 이야기에 항상 귀 기울이는 리더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팀원이 리더를 신뢰할 가능성이 네 배 이상 컸다. 반면 팀원의 말을 경정하지 않는 리더는 신뢰를 얻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의미 없는 피드백은 지적이자, 트집

팀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한 '신규 영업 전략' 프레젠테이션(PT) 자료를 최종 검토하는 김 부장. 팀원에게 알아서 마무리하라고 지시했지만, 팀원은 최종 제출을 앞두고 김 부장에게 최종 검토를 요청한다. "부장님, 이거 진짜 최종이고 수정 어렵습니다. 이대로 상무님, 전무님까지 모두 보실 텐데요." 김 부장은 본인의 지시를 번복하고 꼼꼼히 PT 자료를 살핀다.

그런데 막상 팀원에게 돌아온 피드백은 글씨 간격, 서체, 글자 색 같은 형식적인 부분이었다. 그 외에는 피드백이 없다. 팀원은 "부장님 바쁘실 텐데, 그런 건 저희가 정리하겠…" 김 부장은 팀원의 말을 끊고 무심하게 말한다. "너희가 잘했으면 내가 안 바빴겠지." 자료의 가독성과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정작 내용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어 팀원은 난감하기만 하다.

요즘 세대에게 자신이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은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다. 성장과 성과를 이끌어주는 '의미 있는 피드백'를 원하는 이유다.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까?" "잘했다면 뭘 잘했나?" 등과 같은 질문은 더 나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성장을 위해서라면 건설적인 쓴소리도 얼마든지 달게 삼킨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의 2024년 5월 조사에 따르면, 20~40대 직장인(2282명)이 꼽은 이상적인 상사 1위는 '피드백이 명확한 상사(42%)'였다. 나이가 적을수록 이런 피드백에 대한 요구는 더 뚜렷했다.

사실 리더 입장에도 효과적인 피드백은 팀을 성장하게 하는 최고의 투자다. 직원의 몰입도와 생산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2024년 1월 갤럽 조사(약 1만5000명 대상)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 의미 있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답한 직원의 80%는 업무에 완전히 몰입(fully engaged)한 상태였고 몰입한 직원의 생산성은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14% 높았다. 리더가 어떤 피드백을 줬냐에 따라 팀의 몰입 수준과 성과가 달랐다.

드라마의 원작 소설에서 김 부장의 상사는 김 부장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너도 알지? 내가 팀장 달기 전에는 별로 인정 못 받았던 거. 내가 팀원보다 나은 게 없더라고. 그래서 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알아? 팀원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였어."

세상에 완벽한 리더는 없다.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 당장 무엇부터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좋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