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800m의 미시시피강을 통해 배에 실려온 철광석 펠렛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100m 높이의 직접 환원 제철 설비(DRP·Direct Reduction Plant)로 옮겨진다. 여기서 천연가스로 환원된 직접환원철(DRI·DirectReducedIron)은 철 스크랩과 함께 전기로를 거쳐 용강(鎔鋼·쇳물)으로 만들어진다.
생산된 쇳물은 틀에서 굳혀져 각편이나 판재 등의 중간재로 만들어진 뒤, 열연·냉연 공정을 거쳐 최종 제품이 된다. 제품은 공장 내부까지 이어진 철도와 인접 도로를 통해 육로로 출하되거나, 원료를 들여온 항만으로 배에 실려 고객사에 전달된다.
현대제철(004020)이 지난 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세계 수소 박람회 2025′에서 공개한 미국 루이지애나주 제철소 모습이다. 현대제철은 이날 디오라마(Diorama·3차원 축소 모형)를 통해 공장의 모습을 소개했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현대제철이 58억달러(약 8조5480억원)를 들여 짓는 세계 최초의 전기로 일관 제철소다. 루이지애나주 남부 668만㎡ 부지에 170만㎡ 규모 제철소를 짓고 연간 270만톤(t)의 철강재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 美 관세 장벽 넘어 뉴코어보다 고품질 車 강판 공급
루이지애나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약 70%는 자동차용 강판으로 만들어진다.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을 갖고 있다. 연간 900만t의 자동차용 강판이 소비되는데, 이는 향후 1000만t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 내 철강 산업 낙후로 완성차 업체들은 고품질 자동차용 강판 수급에 어려움을 빚고 있다. 현대제철은 이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매긴 50%에 달하는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생긴 수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현대제철은 이곳에서 생산된 자동차용 강판을 600㎞ 떨어진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과 1100㎞ 떨어진 HMGMA(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 우선 공급할 예정이다.
현대제철은 설비 계획 단계부터 자동차용 강판 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전기로 제철소에는 통상 진공탈탄공정(VOD)이라는 정련 공정이 있다. 루이지애나 제철소에는 고강도의 자동차 강판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진공탈가스공정(RH) 정련 설비를 갖췄다. RH는 용강에서 탄소를 제거하는 VOD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드나, 수소나 질소 등의 가스 등도 조절할 수 있어 강철의 순도를 높일 수 있다.
철 스크랩을 주로 활용하는 일반 전기로 제철소와 달리 DRI를 주 원료로 쓰는 직접 환원 제철소로 계획한 것도 고품질의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기 위함이다. 철 스크랩을 주 원료로 활용할 경우 쇳물에 포함된 구리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기가 어렵다. 직접 환원 제철 공법으로 철 스크랩 사용 비중을 낮추면 전기로라고 해도 철의 순도를 높여 고로 제품에 버금가는 고품질 강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현대제철의 설명이다.
현대제철은 이를 통해 현지 경쟁사인 뉴코어(Nucor) 제철소에 비해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현지 완성차 업체인 포드, GM 등에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쇳물부터 제품까지 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일관제철소의 장점을 살려 고객사의 다양한 요구에 맞춘 제품을 공급할 계획이다.
◇ 탄소 배출 줄여 환경 규제 대응… 수소환원으로 니어제로 목표
현대제철은 루이지애나 제철소를 통해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환경 규제에 대응하려는 고객사의 수요도 맞출 계획이다. 직접 환원 제철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철강재는 석탄을 사용하는 기존 고로 공정 대비 탄소 배출량이 최대 70% 적다. 완성차 업체들이 부담하게 되는 환경 부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현대제철은 루이지애나 제철소에 처음으로 탄소포집및저장(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배출되는 탄소 가운데 약 70%를 포집 처리해 배출량을 낮출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공장 내 CCS에 포집 탄소를 저장하더라도 용량이 다 차면 이를 옮겨야하는데, 거리가 멀면 비용이 많이 든다"며 "인접 화학 기업 단지에 대규모 탄소 저장 시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809만t의 조강생산량과 이산화탄소 환산톤수(CO2eq) 기준 2658만t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록했다. 조강생산 1t당 평균 1.5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셈이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직접 환원 제철 공정과 CCS를 이용해 조강생산 1t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0.13t까지 낮춰 연간 33만t 수준만 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제철은 더 나아가 직접 환원 제철소 공정에서 환원제(화학 반응에서 다른 물질을 환원하게 하고 자신은 산화되는 물질)로 쓰이는 천연가스(CH4) 비중을 낮추고 수소를 사용하여 탄소 배출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니어 제로(Near-Zero) 제철소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 30만t급 수소환원 파일럿 공정 설계를 완료한 포스코와도 협업을 진행한다. 포스코는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설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세계 최초로 지어지는 자동차용 강판 맞춤 전기로 일관 제철소라는 데 의의가 있다"며 "고로 공정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뒤지지 않는 품질의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돼 지금도 수요 기업들의 문의가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