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그룹 오너가 4세인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이 지배 구조 정점에 있는 ㈜코오롱 주식 대신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글로벌(003070) 주식을 사들이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언젠가 이뤄질 이규호 체제 출범에 앞서 명분을 쌓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코오롱그룹 승계는 이웅열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주사 ㈜코오롱 지분(49.74%)이 아들인 이 부회장에게 넘어가야 마무리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규호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코오롱인더스트리 주식 2441주(0.01%)를 주당 4만975원에 장내 매수했다. 코오롱글로벌 주식 1만518주(0.05%)도 주당 9508원에 사들였다. 그간 코오롱그룹 계열사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가 총 2억원을 들여 처음으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 부회장이 주식을 산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글로벌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9년 ㈜코오롱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인적 분할해 세워진 사업 회사다. 그룹의 근간이 되는 화학, 패션, 소재 등을 영위하며 전체 그룹 매출 중 약 40%를 차지한다.
코오롱글로벌은 건설,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먹거리 개발을 맡고 있다. 이규호 부회장은 코오롱글로벌의 수입 자동차 판매 사업 부문을 분할해 자동차 유통 전문 기업인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두 회사는 이 부회장이 주요 경력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그는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해 2014년 부장으로 승진했다. 이어 2015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2017년 ㈜코오롱 상무→201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2021년 코오롱글로벌 부사장→2022년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이사→2023년 ㈜코오롱 부회장으로 경력을 쌓아왔다.
이 부회장은 현재 ㈜코오롱,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의 사내이사로 등기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코오롱 오너 일가가 ㈜코오롱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웅렬 명예회장이 2019년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 후 처음이다.
코오롱그룹은 이 부회장 중심으로 4세 경영 체제가 사실상 자리 잡았다. 이 부회장의 여동생 소윤, 소민 씨는 현재 유학 중이며, 회사 경영과 무관한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분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 부회장은 내년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상장 폐지한 후 ㈜코오롱의 자회사로 편입시킬 예정이다. 수익성이 높은 알짜 계열사를 비상장사로 바꿔 지주사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운영 효율화를 위해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자회사 코오롱ENP 간 흡수 합병도 내년 4월 완료할 예정이다.
이번 이 부회장의 계열사 주식 매입을 두고 공식적인 이규호 체제 선포에 앞서 명분을 만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재벌가에서 그룹 후계자가 회장 자리에 오르기 전 상징성을 드러내려고 주력 계열사의 주식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일환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은 부회장 시절인 2020년 3월 한 달간 현대차 주식 58만1333주를 주당 6만9792원에 사들이며 지분율은 1.81%에서 2.02%로 0.21%포인트 늘렸다. 이후 같은 해 10월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당시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했다면 순환출자 구조상(현대모비스(012330)→현대차→기아(000270)→현대모비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야 했다. 그러나 현대차 지분을 매수하며 차기 경영자로서 상징성을 드러낸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은 2015년 자본 잠식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현 삼성E&A(028050))이 1조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할 때 구원투수로 나선 적이 있다. 이 회장은 실권주가 생길 경우, 최대 3000억원까지 받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계열사 경영위기에 총수가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 회장의 결단은 계열사를 반드시 살리겠다는 의미로 시장에 전달됐다. 그 결과로 유증 청약이 흥행하면서 이 회장은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이 회장 역시 삼성그룹 지배력을 높이려면 사실상 지주사 역할인 삼성물산(028260)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상식적인 행보였다. 삼성그룹은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전자(005930)·삼성생명(032830)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지분 매입을 감안하면 이규호 부회장은 2~3년 후 그룹 회장으로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보통 승계가 그렇다. 이웅렬 명예회장이 가진 ㈜코오롱 지분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이 부회장에게 넘어갈 몫이어서 당장 자금을 마련해 지분을 사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