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003240)이 내년 2월 애경산업 인수 종결을 앞두고 잔금 마련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자사주 활용이 막힌 상황이라 은행 대출, 부동산 자산 유동화 등이 유력 조달 방안으로 거론된다. 태광산업은 현금성 자산을 2조원가량 보유하고 있으나, 재무 구조 안정을 위해 일부 자금은 시중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2일 태광산업에 따르면 이 회사는 3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발행 계획을 철회한 후 다른 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보유 현금으로 인수 자금을 내는 것보다 시중에서 조달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며 "여러 방식을 검토한 후 내년 2월 애경산업 잔금 납부 전까지 충분한 자금을 마련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광산업이 내야 하는 애경산업 잔금은 4465억원이다. 지난 10월 태광산업 컨소시엄은 애경산업 최대주주 지분 63.13%를 4700억원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하며 계약금으로 5%인 235억원을 냈다. 나머지는 내년 2월 19일에 지급하기로 했다.
태광산업은 최근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 애경산업에 이어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을 2500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연말까지 잔금을 납부할 계획이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중형 조선사인 케이조선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케이조선의 기업 가치는 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태광산업은 자회사 흥국생명의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자금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본입찰에서 1조원대 가격을 제시하며 입찰자 중 최고가를 써낸 것으로 전해진다. 흥국생명은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을 흥국코어리츠에 매각해 7200억원을 확보한 상태다.
태광산업은 그동안 무차입 경영 기조를 유지하며 외부 자금 조달을 최소화해 왔다. 쌓아둔 현금이 충분하지만, 인수·합병에 모두 소진하진 않겠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4월 SK브로드밴드 지분 매각으로 9000억원이 유입되며 현금성 자산이 크게 늘었다. 단기 차입금은 400억원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태광산업이 먼저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시중 대출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태광산업의 부채 총계를 자본 총계로 나눈 부채 비율은 16%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앞서 2010년 신용등급 AA-를 받은 이력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태광산업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회사채를 발행하더라도 가장 낮은 금리로 융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수동과 강남, 부산 등 태광산업이 가진 알짜배기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자산 유동화도 가능한 상황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4월 흥국리츠운용을 출범시켰고, 9월에는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을 담은 흥국코어리츠를 만들었다. 이어 태광제1호리츠를 만들어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 인수 계약을 주도했다.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 측은 "태광산업 성수동 부지만 해도 시장 가치가 1조원이 넘는다. 주요 부지에 대한 감정 평가를 제대로 한다면 부동산 가치만 수조원에 달할 것이다. 부동산만 활용해도 수천억 원을 조달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이 막히자 주가수익스와프(PRS)를 통해 자사주를 유동화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산업은 주가가 연중 최고가인 120만원까지 오르자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를 발행하려 했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자사주 가치를 기반으로 3200억원이 책정된 것일 뿐, 향후 회사가 얼마나 자금이 필요한지는 다시 알아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는 "현 경영진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면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차입, 자산 매각 등 여러 자본 조달 방법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