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의 구조 개편 1호 기업인 롯데케미칼(011170), HD현대케미칼이 내년 초 회사채 발행에 도전한다. 그간 석유화학 업황 악화로 회사채 투자 수요가 없어 필요한 시기에 장기 투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웠다. 정부 주도로 구조 조정에 속도가 붙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다른 석유화학 기업들도 회사채 발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 사업 재편 계획을 마련해 정부에 가장 먼저 제출한 롯데케미칼(011170)(AA-·안정적), HD현대케미칼(A·부정적)은 내년 1분기 회사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두 회사 관계자는 "내년 초 차환 시기에 맞춰 회사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023년 9월 회사채로 5100억원을 조달한 이후 회사채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석유화학 업황이 나빠지면서 신용 등급 강등 우려로 투자 수요가 위축된 탓이다. 실제 지난 6월 신용 평가 3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는 상반기 정기 평정에서 롯데케미칼의 신용 등급을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롯데케미칼은 내년 3월 새 채권을 발행해 만기가 도래하는 3950억원의 회사채부터 차환할 가능성이 크다. 이어 4월(2600억원), 9월(800억원) 등 총 745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예정됐다.
그간 롯데케미칼은 회사채 차환 대신 현금으로 채권을 상환하면서 버텼다. 자금 조달 환경이 나빠지자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기업어음(CP)을 발행하거나 매입채무 유동화로 유동성을 확보했다. 비핵심 자회사 매각, 긴축 경영 등 올해 3분기 개별 기준 쌓아둔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 1조3800억원에 달한다.
HD현대케미칼은 직전 회사채 발행 시기가 올해 1월인데, 당시 기업 신용 등급 대비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하며 자금을 조달했다. HD현대케미칼 2·3년물 회사채를 4%대 금리로 발행했는데, 이는 한 단계 아래인 A-급 금리에 가깝다. 내년 2월(240억원)부터 총 315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해 시기에 맞춰 발행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여수·울산 지역 석유화학 기업들도 구조 개편 이후 회사채 발행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8월 부도 위기에 처했다가 대주주 지원으로 위기를 넘긴 여천NCC(A-·부정적)는 자금 조달이 절실한 상황이다. 내년에는 3150억원, 2027년에는 13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지난해 여천NCC는 공모 회사채로 1000억원을 조달했는데, 주문이 40억원만 들어와 팔리지 않은 물량은 주관 증권사가 모두 떠안았다. 회사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없으면 발행 금리가 높아진다. 효성화학(298000)(BBB·안정적)도 지난해 세 차례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한 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석유화학업계에서는 내년 구조 개편 효과가 나타나면, 기업들의 조달 여건도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업황 전망이 우호적인 건 아니지만, 개별 기업의 재무 구조는 개선될 여지가 크다. 회사채 투자 수요도 되살아날 수 있다.
국내 증권사들이 종합 투자 계좌(IMA)와 발행어음 사업에 진출하면서 석유화학 기업 회사채와 같이 투자 수요가 적었던 곳에 돈이 몰릴 것이란 전망도 있다. 증권사들의 모험 자본 투자 자금이 대폭 늘어날 예정인데, 정부 가이드라인인 신용 등급 BBB급 이상 투자처가 많지 않아서다.
증권사가 IMA 사업 인가를 받으면, 발행어음과 IMA를 합쳐 자기자본의 최대 3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대신 조달 금액의 25%는 의무적으로 기업 대출 등 모험 자본으로 공급해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정리되면 내년 1분기부터 회사채를 발행할 텐데, IMA와 발행어음에서 회사채를 담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