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여러 의원안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생략되거나 변경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기요금과 조세감면에 대한 정부 지원안을 두고 산업통상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 '타 산업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철강업계에서는 산업의 존폐가 달린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다소 소극적인 자세로 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국회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19일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지식재산소위원회 임시회의에서는 4명의 산자위 소속 의원들의 발의한 철강산업 지원 관련 법안을 하나의 법안으로 통합하는 논의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는 전기요금과 관련한 정부 지원안을 'K-스틸법' 뿐만 아니라 '석유화학지원법(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 특별법)'에서 사실상 제외하기로 결정됐다. 산자위 의원들은 철강, 석유화학 산업에 한해 정부가 전기요금을 보조하자는 내용과 향후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철강특위)'를 통해 전력수급 계획을 심의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당초 법안에 담았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당시 회의에 참석해 "직접적인 전기요금 감면이나 지원의 경우 WTO 규정상에 제소 가능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타 법이나 타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서 이 조항에 대해서는 불가피하게 삭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기재부도 '산업 분야별로 요금보조를 통해서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경우에 가격 기능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철강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지원안이 절실한 상황이다. 철강산업에서 전기요금은 철강제품 원가의 약 10%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최근 3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약 70% 올랐다.
전기료가 1kWh(시간당 킬로와트)당 1원 인상될 경우 철강업계는 연간 원가 부담이 100억~2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 삼성전자 다음으로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현대제철이 발전사와 직접 전력 구매 계약(PPA) 가입을 검토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김원이 산자위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부처는 직접 보조금을 주는 것이 WTO 제소대상이라는 점을 의식했고, 이 부분을 논의 끝에 받아들여 최종안에서 뺐다"면서 "정부가 지원을 해주기로 했으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더 도움이 됐었을 텐데 아쉬운 감이 있다"고 했다.
또 다수의 의원들이 철강산업 지원을 위해 조세감면안을 제시했지만 기재부의 반대로 최종안에서는 빠지게 됐다. 의원안에는 탄소중립, 설비개선 등을 일정 수준 달성한 업체에 한해 조세감면 혜택을 주자는 내용이 담겼다.
박희석 산자위 수석전문위원은 회의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거나 감축 목표를 달성한 사업자를 위해서 조세를 감면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기재부와 행정안전부가 각각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특례제한법의 취지 근거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고 했다. 해당 법률상 대원칙에 따라 개별 법에 세세한 사안들을 규정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회의에서 산자위 의원들은 '기재부가 이렇게 반대를 해서 철강산업을 살릴 수 있겠냐', '기재부가 반대하면 안되는 거다' 등 불만을 제시하기도 했다.
'K-스틸법' 통합 과정에서 '탄소중립'에 더욱 무게가 실리면서 '미국의 50% 관세'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의에는 다소 힘이 빠졌다.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의 관세인상과 유럽연합(EU)의 철강 저율관세할당(TRQ) 도입으로 연간 약 8700억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되고 있다.
당시 회의에서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처 간의 이견 또 통상관계 등을 고려해서 정작 핵심 내용이 빠진 상태로 의결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면서 "관세협상을 감안하면서도 법안소위 내내 철강산업특별회계를 포함해 많은 부분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향후 보완 법안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철강산업특별회계는 K-스틸법이 시행될 경우, 정책실행에 필요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회계를 뜻한다.
K-스틸법 최종안에서는 향후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이끌어나갈 철강특위가 국무총리 직속 기구로 결정됐다. 당초 의원안에서는 대통령, 국무총리, 산업부 장관 직속 등으로 제시됐었다. 다만 여야 의원 106명이 공동발의한 어기구·이상휘 의원안에서는 '대통령 직속'으로 언급됐던 만큼 업계에선 '대통령 직속 특위' 설립을 기대하고 있었다.
권향엽 의원은 "대통령이 직접 철강산업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의도가 있었는데, 일정·행정 편의성 등을 고려해 국무총리 직속이 적절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면서 "각 부처를 조율해야 하는 만큼 산업부 장관 직속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철강특위는 산업부와 한국철강협회를 중심으로 내년초 설립될 예정이다. 위원장은 국무총리, 간사 위원은 산업부 장관이 맡게 된다. 위원회 규모는 약 20명 수준으로 관련 부처 공무원과 민간위원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특위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5개년 기본계획과 1년 단위의 시행계획 등 실질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게 된다.
한편 K-스틸법은 어기구 더불어민주당·이상휘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과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철강산업 진흥 및 탈탄소 전환 촉진을 위한 특별법안),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 지원 특별법안),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이 대표발의한 법안 등 4개의 법안을 통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