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이번 주에 사업재편안을 공식 제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다른 석유화학 기업의 사업 재편 일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내놓은 사업 재편안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지원책을 내놓은 이후에 나머지 업체의 사업 재편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과잉 설비 감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채비율 증가를 조정할 수 있는 대책과 스페셜티 제품 생산으로 전환하기 위한 자금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이번 주 안에 이사회를 거쳐 HD현대케미칼과의 사업 재편안을 승인한다. 직후 두 회사는 사업재편안을 대한상공회의소 사업재편종합지원센터에 제출하고 관련 공시를 할 예정이다.
두 회사는 그동안 산업통상부에 사업 재편 초안을 제출한 뒤 구체적인 방법을 조율했다. 이렇게 마련한 최종안을 이번에 대한상의에 제출한다. 사업재편안은 대한상의에 제출해야 공식 제출한 것으로 인정된다.
대한상의 사업재편종합지원센터는 기업이 구조변경이나 사업 혁신 활동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자 사업 재편을 추진할 경우 이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각종 특례를 부여하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의 실행을 돕는 기관이다.
정부가 석유화학 사업 재편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중국발(發) 공급 과잉에 따른 시황 악화가 있다. 이 때문에 업계는 자율 컨설팅 결과를 반영해 전체 생산 능력(1470만톤)의 18~25% 수준인 270만~37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감축하기로 했다. 문제는 어떤 기업이 이를 감내하느냐다.
사업재편안을 제출하는 두 회사가 다른 기업 보다 빠르게 합의하는 것은 두 회사가 지분구조로 얽힌 상황이라 이해관계 조율이 상대적으로 쉬웠던 덕분이다. 두 회사는 대산 석유화학 산업단지 내에 함께 있는데다, HD현대케미칼 지분을 HD현대오일뱅크가 60%, 롯데케미칼이 40%로 나눠 갖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수 산단 내 LG화학·롯데케미칼·여천NCC와 울산 산단 내 SK지오센트릭·대한유화·에쓰오일은 공통분모가 없는 회사다. NCC 감축에 양보 없는 수싸움을 할 가능성이 크다.
NCC 감축이 쉽지 않은 것은 단순히 매출이나 이익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서다. NCC 감축을 위해선 일부 설비를 매각 또는 스크랩(폐쇄)하거나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 이 경우 NCC 설비 일부가 유휴 설비가 되면서 회수 가능액이 장부가액보다 낮아지고, 손익계산서에 손상차손이라는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
이는 곧 이익잉여금 감소 → 자본 감소 → 부채비율 상승으로 이어져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NCC 설비 감축을 진행하는 순간 기업의 부채비율이 증가해 신용도가 낮아지고, 차입 여건이 악화하는 역설적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NCC 감축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의 압박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겨우 공멸한다는 위기감이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사업재편을 하라고 한 것과 별개로 석유화학 업계 전체에 NCC 설비를 감축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며 "가만히 있으며 다 죽는 치킨게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사업 재편을 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으면 은행을 통해 채권 회수가 들어오고 유동성이 막혀 부도가 날 수도 있다"며 "다수의 석유화학 업체가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운영 자금은 들어가야 하니, 사업 재편안을 제시하면 지원책을 마련해준다는 정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1호 사업재편안을 내놓을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에 내놓을 지원책이 석유화학 NCC 감축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정부는 사업재편안에 따른 지원책이나 사업재편안을 내놓지 않고 무임승차를 할 경우 받을 페널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NCC 설비를 감축했을 경우 발생하는 부채비율 상승을 해소하기 위해 회사의 신용등급에 정부가 보증을 서주거나, 감축하는 설비 투자에 대한 보전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방안이 마련된다면 업계가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에 제시하는 지원책이 업계의 호응을 얻으면 사업 재편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지원책이 생각보다 미미하다면, 사업 재편은 지금처럼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