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003240)이 자기주식(자사주) 대상 교환사채(EB·Exchangeable Bond) 발행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애경산업, 메리어트 호텔 인수 등 사업 재편을 위해 자사주를 활용한 대규모 자금 조달을 진행했으나, 상법개정안 통과 이후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거세졌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추진하는 정부 기조에 맞춰 우선 자사주는 손대지 않기로 했다.

24일 태광산업은 오전 이사회를 열어 6월 27일 최초 공시한 교환사채 발행 및 자기주식 처분 결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태광산업은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1%)을 교환 대상으로 3186억원 규모의 사모 교환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다.

서울시 중구에 있는 태광산업 본사./태광산업 제공

교환사채는 발행회사가 보유하는 있는 자사주, 계열사 주식 등과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를 의미한다. 채권자는 일반 채권처럼 만기까지 이자를 받거나, 교환 대상의 주가가 오르면 만기 전에 주식으로 바꿔 매도해 차익을 얻을 수도 있다.

앞서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채권자에게 1주당 117만2251원에 태광산업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자율은 0%로, 채권 보유로 얻는 이자는 없다. 주식으로 전환 후 매도해야 이익이 나는 투자처인 셈이다.

태광산업은 석유화학 사업의 불황으로 본업 실적이 나빠지자 교환사채를 발행해 포트폴리오 재편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태광산업은 2022년부터 3년 연속 영업 손실(1045억원→994억원→27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 누적 영업 손실만 580억원에 달해 4년 연속 영업 적자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사업 확장을 위해 남대문 메리어트 호텔(2850억원), 애경산업(4700억원)을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5000억원 규모로 평가되는 케이조선 인수전에도 참여했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5040억원)에 단기금융상품까지 합치면 보유 현금성자산은 총 1조3222억원에 달한다.

기업으로서 자사주 대상 교환사채를 발행하면 신주 발행 없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채권자가 청구권을 행사하면, 유통 시장에서 잠겼던 자사주가 시장에 나올 뿐 전체 상장 주식 수는 바뀌지 않는다. 이와 달리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은 청구권 행사 시 신주가 발행돼 전체 상장 주식 수가 늘어나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된다.

자사주 대상 교환사채를 우호 세력에 넘겨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기업이 자사주를 보유 중일 땐 의결권이 없지만, 교환사채를 통해 외부 투자자에게 이전되고, 청구권이 행사되면 의결권이 다시 살아난다. 기업 입장에선 현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우호 세력에 주식을 넘겨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주 가치 훼손을 주장하는 주주들의 거센 반발, 정부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 기조 방침 등이 겹치면서 결국 교환사채 발행을 취소했다. 현 정부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가 줄면서 주식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교환사채 발행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가 이날 오전 취하했다.

회사 측은 "자사주 소각 등에 대한 정부 정책 기조와 주주 가치 보호라는 측면에서도 자사주 처분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영권 방어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시행되면, 경영권 분쟁이 빈번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는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의 문제점 연구' 보고서를 통해 임직원 보상, 전략적 제휴, 재무구조 개선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돼 온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면 기업의 활용 폭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도 쓰지 못해 외국계 헤지펀드 등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