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규모의 제2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이 예정된 가운데 배터리 업계의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1차 입찰에서 승기를 잡았던 삼성SDI(006400)가 이번에도 비슷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온이 설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3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은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8년까지 23기가와트(GW) 규모의 ESS를 전국에 공급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제1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은 2026년에 필요한 540메가와트(MW) 규모의 ESS를 대상으로, 제2차 ESS 중앙계약입찰은 2027년에 필요한 540MW 규모의 ESS를 대상으로 한다.

지난 7월 발표된 1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 결과는 삼성SDI의 승리로 끝났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국내 생산 조건을 내건 삼성SDI는 8개 사업지 중 6곳(전남 진도·전남 고흥·전남 영광·전남 무안·전남 안좌·전남 읍동)의 배터리 공급자가 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2곳(전남 광양, 제주 표선)을 확보했고 SK온 한 곳도 확보하지 못했다.

충북 청주 소재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에너지플랜트 전경. / LG에너지솔루션 제공

국내 생산 제품으로 입찰하면 비가격 평가 기준 중 산업·경제 기여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1차 입찰 당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입찰에 참여했다. 반면 삼성SDI는 울산 공장에서 생산한 NCA 배터리를 내걸었고 전체 물량의 약 80%를 가져갔다.

정부는 2차 입찰을 앞두고 평가의 배점을 일부 조정했다. 가격 평가와 비(非)가격 평가 비중이 동일해졌고, 비가격 평가 기준 중 화재 및 설비 안전성 점수를 기존보다 3점 높였다. 산업·경제 기여도, 계통연계도 배점도 1점씩 추가됐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모두 이번 입찰에서 국내 생산 배터리를 입찰 조건으로 내걸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충북 오창 배터리 공장에 올해 말 ESS용 LFP 배터리 생산 라인을 구축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본격 가동 시점은 2027년부터로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납품 시점과 일치한다.

SK온은 충남 서산에 있는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에서 ESS용 LFP 파우치 배터리에 대한 양산성 검증을 진행했다. 국내에서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한 기반 작업을 한 것이다.

1차 입찰 때와 달리 비가격 평가 기준 중 화재 및 설비 안전성 점수가 높아진 것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가점을 받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삼성SDI가 1차 입찰 때 제시한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는 화재 안전성 면에서 LFP 배터리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LFP 배터리의 양극 소재인 리튬철인산염은 산소 방출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적다. 이 때문에 LFP 배터리는 NCA나 니켈코벨트망간(NCM) 배터리보다 열 폭주 시작 온도가 60~90도 높은 270도라 상대적으로 화재에 강하다.

이 밖에 LFP 배터리는 무게는 무겁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수명이 길다는 장점도 있다. NCA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와 높은 출력이 강점이라 고성능 전기차나 대형 ESS에 적합하다. 그만큼 LFP 보다 비싸다는 건 단점이다.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비가격 평가 배점표. / 전력거래소

정부가 화재 및 설비 안전성을 높게 평가하겠다고 한 상황이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2차 입찰에도 LFP 배터리를 공급한다고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삼성SDI는 국내에서 ESS용 LFP 배터리를 2027년에 생산하겠다는 계획만 세운 상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2차 입찰에서 LFP 배터리로 내세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평가 기준 중 가격 평가 비중이 기존 60%에서 50%로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가격 경쟁력은 중요 요소다. 육지와 제주로 나눠 가격 평가를 진행하지만, 지역별 최저가 낙찰이 원칙인 만큼 출혈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배터리 업계에선 삼성SDI가 1차 입찰에서 상당량의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소로 가격을 꼽는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상대적으로 고가인 NCA 가격을 1차 입찰 마감 직전 대폭 낮췄다고 알려져 있다"며 "재고 털기였는지 공장 가동률 높이기의 일환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삼성SDI가 가격을 굉장히 낮게 써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전력거래소는 24일까지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말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입찰서를 종합 평가한 후 2026년 2월 정도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