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소형 모듈 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 개발을 적극 장려하면서 현지 SMR 기업 20여 곳이 신기술 개발, 투자금 유치, 건설 인허가 등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가장 개발이 빠른 미국 기업은 뉴스케일파워인데, 상용화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기업의 개발 속도가 알려진 것보다 빠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SMR을 상업 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로 혁신형 SMR(i-SMR)을 개발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도를 개선하고 민간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뉴스케일파워의 소형모듈형원자로(SMR)의 상부시설 목업/ 뉴스케일파워 유튜브

22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의 약 4배로 늘리려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SMR 규제 혁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규제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규 원자로의 허가 절차를 줄이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새로운 원자로 건설·운영 신청 시 18개월내에, 기존 원자로 운전 연장 신청에 대해선 1년 내에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내용이다.

친원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SMR 기업들의 기술 개발에도 속도가 붙었다.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뉴스케일파워다. 이 회사는 트럼프 1기 행정부 기간인 2020년 8월 미국 역사상 최초로 NRC로부터 설계 인증을 받았다. 뉴스케일파워의 SMR 설계가 미국 내 안전, 환경 기준을 충족한다는 의미다. 현재 경제성을 개선한 모델로 루마니아에 첫 SMR 배치를 진행하고 있다. 루마니아 정부는 석탄화력 발전을 SMR 발전소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도 협업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뉴스케일파워의 SMR 기본 설계에 참여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에 1억400만달러(약 1526억원) 이상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고, 주기기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기술 지원·현지 공급망 개발 등으로 협력한다.

테라파워는 연내 NRC로부터 SMR 건설 허가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테라파워는 냉각재로 액체 소듐을 사용하는 비경수로형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다. 건설 허가가 나오면, 미국 와이오밍주에 있는 문 닫은 석탄 발전소에 SMR을 지을 예정이다. SK그룹, HD현대중공업(329180), 두산에너빌리티 등이 테라파워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했다.

오클로는 이달 미국 에너지부(DOE)와 SMR 시설에 대한 핵 안전 설계 협약(NSDA)을 체결했다. 오클로는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시설을 개발 중인데, 해당 시설의 운영 계획이 DOE의 요구 사항을 충족했다는 의미다. 오클로 원자로는 에너지부 소유 부지인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에 건설될 예정이다.

카이로스파워는 2023년 NRC에서 실험용 원자로에 대한 첫 건설 허가를 받았다. 현재 미국 테네시주에서 실험용 SMR 원자로를 짓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500메가와트(MW)로, 구글이 전량 구매하기로 했다.

엑스에너지는 올해 3월 NRC에 설계 보고서 심사를 요청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아마존으로부터 5억달러(약 7325억원)를 투자받았다. 국내 기업 중에선 DL이앤씨(375500), 두산에너빌리티가 전환사채 형태로 초기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 SMR 기업들이 발표하는 뉴스에 다소 거품이 끼어 있다는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미국 SMR 벤처 기업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호재를 계속 알린다. 실제 따져보면 중요한 단계가 아니거나 진척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개발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자료/i-SMR 기술개발사업단 제공

◇중국·러시아는 이미 SMR 상업 운전...한국형 SMR 과제는 '정부'

원자력 업계에서는 중국, 러시아가 국가 주도로 SMR 기술 개발에 집중하면서 미국보다 앞서나갔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SMR 설계 자체는 다양하지만, 그간 정부의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로 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중국은 세계 최초의 육상 상업용 SMR을 개발해 상업 운전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는 바지선(barge·바닥이 평평한 선박) 위에 SMR을 단 부유식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한국은 정부 주도로 i-SMR 사업단에서 SMR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i-SMR은 올해 표준 설계를 완성한 후 2028년 인허가 취득을 목표로 두고 있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SMR 개발 속도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인허가 획득 절차가 마무리되면 i-SMR 사업단은 해산될 예정이다. 이후 한수원, 민간 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이나 다른 기관에서 i-SMR 상업화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김한곤 i-SMR 단장은 "i-SMR에 관련된 모든 정보가 사업단에 모여 있는데, 사업화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길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제도 개선과 민간 육성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범진 교수는 "우리나라는 원전 개발 첫 단계인 개념 설계부터 마지막 단계인 안전 규제를 받을 때까지 10년 넘게 걸린다. 미국 SMR 기업은 개념 설계와 동시에 투자를 받고, 정부 인허가 과정도 병행해 굉장히 빠르다. 우리나라에선 SMR 관심도가 낮다 보니 인허가 절차도 느려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용훈 교수는 "우리나라는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이 10년간 멈췄다. 정권에 따라 원전이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 국내 여러 대기업에서 미래 먹거리로 SMR을 하고 싶어 한다. 민간 기업이 주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